홍원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63)가 최근 한·일 고대사 문제를 다룬 '백제왜(百濟倭)'(일지사 발행)를 펴냈다. 국제경제학회에서 18년째 영문학술지 에디터로 활동하는 등 국제경제학자로 유명한 홍 교수가 어떤 사연이 있어서 역사 연구에 몰입하게 됐을까. 봄비가 내리는 11일 서울 성북동 자택을 찾아가니 서재는 역사 서적들로 가득차 있었다. "한ㆍ일 고대사는 왜곡된 부분이 많습니다. 일본 학자들의 왜곡은 참을 수 있지만 서구 학자들까지 일본 학자들의 주장을 진실인양 믿고 있다는 점은 참을 수 없었지요." 홍 교수가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지난 81년 오사카대와 런던정경대(LSE)교수를 지낸 모리시마씨가 쓴 '왜 일본은 성공했는가(Why Japan has succeeded)'란 책을 우연히 접하면서부터다. 홍 교수는 이 책에 실린 일부 내용이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처럼 묘사하고 있어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후 틈날때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와 고사기(古事記),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속일본기(續日本紀) 등 고서를 정독하며 한·일 관계사를 연구했다. 5년여의 노력 끝에 1988년 '고대 한·일관계-백제와 대화(大和·야마토)왜'(영어)를 발간하고 1994년 '백제와 대화 일본의 기원'을 영어와 국문판으로 펴냈다. 이번에 나온 책은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것이다. "일본 최초의 통일 정권인 야마토 조정 건국자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백제인이며,이들이 바로 일본 왕실의 기원입니다." 그는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각종 문헌 기록을 인용했다. 또 이해하기 쉽도록 사진자료를 곁들여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유물을 비교했다. "일본인들은 390년께 세운 야마토 정권이 일본 민족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국가를 형성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좀 더 깊이 연구하다 보면 허구라는 점을 여기 저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한·일 고대사 연구 신간이 나올 때마다 역사 연구를 접고 본업인 경제학에 다시 몰두하자고 맘 먹곤 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고 했다.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설 등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진실처럼 알고 있는 외국학자들을 접할 때마다 속이 상해 다시 연구활동의 고삐를 죄다 보니 어언 2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는 새로운 책이 나오면 미국에서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와 주요 도서관에 자신의 책을 보내줬다. 이같은 노력으로 요즘은 외국학자들이 논문이나 국제학술지에서 홍 교수의 책을 인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우리나라에 한·일 관계를 연구하는 정통사학자가 한 사람도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일본은 수백명의 고대 사학자가 1백여년간 연구활동을 하며 지식을 축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재야사학자 10여명만이 활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인들이 제공해 준 내용에 만족해야 하고,왜곡된 내용이 있어도 반박할 만한 학술적 근거가 전혀 없다보니 애국심과 감정만 앞세우는 꼴입니다." 홍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우리나라 정통 국사학자들이 고대 한·일관계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자극제가 되길 바란다는 심정을 밝혔다. 또 정부차원에서 장기적인 연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식년을 맞은 그는 "지금까지는 학교에서는 경제학을,집에서는 역사학을 연구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며 "2년반후 정년퇴임하면 고대사 연구에만 몰두할 것"이라며 기대에 찬 표정을 보였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