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또 다른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 국제경제 및 정치분야의 급격한 질서개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있다. 이라크 전쟁의 '명분'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강대국들은 이제 1천억달러 상당에 이르는 전후 복구시장을 놓고 벌써부터 힘 겨루기에 한창이다. 특히 이라크의 전후 통치방식을 둘러싸고 연합군인 미국 및 영국과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반미진영이 심각한 갈등을 노출하고 있다. 미국-유럽대륙간의 '불매운동 바람'은 또 다른 통상마찰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 경제전쟁은 이제 시작됐다 전세계의 관심은 이미 이라크 전황보다는 전후 복구 사업에 쏠려 있다. 미국 영국이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과 첨예한 이해 대립을 보이는 것도 결국 중동지역에서 경제이권을 챙기기 위한 것이다. 미국은 1천억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복구시장을 발판으로 중동지역에서 경제패권을 잡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8일 북아일랜드에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군정-임시정부-민간정부'라는 3단계 이라크 전후 처리방안에 합의한 것도 '전쟁과실'을 과점하기 위한 의도다. 미국은 새로 구성될 임시정부의 핵심 요직에 친미성향 인물들을 중용, 이들을 통해 석유관할권과 항만 주택 등 주요 프로젝트를 수주한다는 계획이다. 미.영연합군이 유엔과 다른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 이라크에 최장 2년후에나 완전자치를 허용키로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반미국가들의 합종연횡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 및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를 초청,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긴급 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모든 이권이 미국에 넘어가는데 대한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 편 가르기가 세계경제 발목 극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 강대국들의 경제이권 챙기기는 가뜩이나 부진한 상황에 있는 세계경제에도 큰 악재가 될 전망이다. 이미 미국과 독일 프랑스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유럽에는 '미국제품 불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프랑스 독일 제품을 다른 나라 상품으로 바꾸겠다'는 미국인들도 60%를 넘고 있다. 아직 양극화되고 있는 불매바람에 대한 구체적 결과가 나오지는 않고 있지만 수치가 가시화될 경우 통상마찰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경제전쟁은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앞날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편 가르기가 심화되면서 협상보다는 '세몰이'가 국제질서를 지배해 기존의 협상룰이 깨질 수도 있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