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서적 전문출판사인 다산출판사는 최근 '재벌개혁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책을 4년만에 다시 찍었다. 지난 99년 7월 초판 1천부를 찍었다가 반품이 많아서 절판했던 책이다. 이 회사 강희일 사장(58)은 "지난 달에 저자인 강철규씨가 공정거래위원장에 취임하자마자 여기저기서 책을 주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며 "이미 절판돼 서점에도 없기 때문에 다시 찍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지난 79년 출판사를 연지 24년이 지났지만 절판된 책을 다시 찍는 일은 아주 드문 경우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앞으로 판매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5백부만 더 찍기로 했단다. 이 책은 주로 공무원이나 기업,연구소 관계자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출판사에 책을 주문해 샀다는 공정위의 한 간부는 "강 위원장이 기업정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왔고 어떤 주장을 폈는지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직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강 위원장의 책을 읽는 데 열심이다. 업무중에 읽기도 하고 일부는 겉표지를 포장지로 싸서 출·퇴근길에 보기도 한다. 직원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인지 요즘 공정위에서 나오는 자료의 내용이 확실히 예전과 달라졌다. 사실 관계를 객관적으로 나열하던 이전의 보도자료와는 달리 최근에는 상당히 '학술적인' 용어들이 섞여있다. '기업 지배구조시스템은 영·미식 시장중심형 모델(market-based model)과 일·독식 관계중심형 모델(relationship-based model)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일·독식 관계중심형에 가깝지만 사실상 총수가 지배한다는 점에서 후진국형 지배구조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아직 일부는 감을 잡을 수 없다고 한다.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강 위원장이 장관급으로 입각한 후에도 생각이 그대로인지,어느 정도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현안을 다루는 부서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하다. 때문에 더 열심히 과거 책들을 보고 신문기사도 뒤적인다. 공정위 공무원들은 요즘 시쳇말로 '코드(code) 맞추기'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박수진 경제부 정책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