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무선인터넷 산업을 활성화하고 동시에 세계시장에 진출할 목적으로 의욕적으로 추진됐던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WIPI)이 난관에 처하게 됐다. 미국 퀄컴이 외국업체에 대한 불공정한 기술규제라고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이번에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다고 나선 것이다. 썬 역시 퀄컴과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미 무역대표부에 제기,무선인터넷 표준은 한ㆍ미 정부간 핵심 통상현안으로 등장한 상태다. 미국 업체들이 공세적으로 나오는 배경은 너무도 간단하다. 한국의 무선인터넷 시장이 세계에서 앞서 나간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상 신기술의 실험무대가 되고 있어 이 시장을 누가 주도하느냐는 세계시장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뭔가 새로운 표준으로 세계시장을 한번 주도해 보자고 의욕을 가졌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만 미국 업체들이라고 해서 이를 모를 리 없다. 한국시장에서 CDMA의 상업화 덕택으로 일약 세계적 기업이 된 퀄컴은 그 여세를 몰아 무선인터넷 플랫폼을 노리고 있었고 모바일 관련 규격에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썬 등도 이를 주시해 왔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의 공세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에 대비해 우리가 사전에 정지작업을 했거나 면밀한 조사를 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자사에 불리한 그 어떤 표준도 불공정하다고 몰아가는 퀄컴의 주장에는 물론 억지가 있다고 해도 썬의 경우는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볼 점이 없지 않다. 썬이 이의를 제기한 부분은 자신들의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와 관련된 '공개규격'이다. 하지만 규격이 공개됐다 해서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대단한 판단 착오가 아닐 수 없다. 기술공개는 어디까지나 세(勢)의 확산을 위한 것일 뿐,막상 상업화하려 하거나 시장이 커질 조짐을 보이면 라이선스 문제는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돼있다. 침해가 있다면 기업 차원에서 협상을 하면 될 터인데 미 무역대표부에 한국을 지식재산권 우선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하라는 썬의 접근법이 못마땅해 보이지만 이는 원천기술을 가진 선진기업들의 통상적 전술이기도 하다. 무선인터넷 플랫폼 표준문제는 중요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공개된 기술이라도 결코 공짜일 수 없고 따라서 기술개발을 하든 표준화를 하든 사전에 라이선스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또 기초ㆍ원천기술이 없으면 이런 시비를 피해 나가기가 참으로 어려운 현실을 다시 한번 직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