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이라크전쟁 파병 결정이 있은 후 연일 반전·파병반대시위와 파병지지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고,파병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국회내 논란이 가열돼 급기야 국론분열을 우려케 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됐다. 파병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이라크전쟁이 유엔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침략전쟁이며,이를 도와 파병하는 것은 헌법이 부인하고 있는 침략전쟁을 돕는 일"이라며 목청을 높인다. 반면 파병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한·미간의 오랜 동맹관계를 돈독히 해야만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거를 내세우면서 전략적 선택을 강조한다. 이 와중에 일부 야당의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파병결정을 하고 나서도 국론분열을 방관하면서 야당에 부담을 떠넘기는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4월 2일로 예정된 대통령의 국회 본회의 국정연설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라크전 파견동의안 처리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그로 인한 갈등이 쉽사리 진정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전 파병문제는 찬반 양론이 모두 각기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는데도 절충이 어렵고,또 반드시 어느 한쪽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극히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우리를 이끈다. 반면 파병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세계관과 신념에 닿아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느 한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다른 한쪽이 완전히 설복당하거나 압도되는 결과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파병문제의 처리 자체가 상당기간 한국 정치의 지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지만,이러한 화해할 수 없는 상극관계가 반드시 해로운 것만은 아니다. 과거 우리는 최고통치자인 대통령의 한마디만 있으면 안되는 게 없는 사회에 꽤 오랫동안 살았다. 그러다 보니 미국 등 선진국들과의 통상협상 과정에서 그들이 '의회에서의 반대나 논란'을 이유로 내세우면서 우리 요구에 난색을 표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국회 통과가 어렵다'는 우리의 이유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도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나라의 반열에 서게 되면서 국회에서의 논란을 외교적으로 선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그렇지만 그런 민주주의의 건강한 논란이 일국의 외교에 표리부동의 이중적 얼굴을 덧칠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될 것이다.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고 나서도 '토론하면 진다'는 식의 수세로 일관하면서 '내키지 않는 듯한 전략적 선택의 표정'을 짓는다면 그 '건강한 논란'의 이점은커녕 자신이 내린 결정의 주목적을 희석화하는 역효과를 초래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어느 시민운동가는 "국익을 이유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갈파한다. 맞는 말이다. 국익을 내세워 국제마약조직과 손을 잡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반면 국익을 위해서라면 적과도 협상을 벌일 수 있다는 것이 오랜 국제정치의 경험이자 진실이다. 국익만능도 안되지만,도덕적 명분만으로 국익추구의 가능성을 제약하려는 시도도 위험하기는 매한가지다. 파병의 효과는 다소 분명하지만,그 명분은 취약하다. 반면 파병반대의 명분은 분명하지만,파병거부의 효과는 불분명하다. 그 어느 쪽도 완전한 '설득력의 우월'을 주장하기 어렵다. 상황이 그러니 이제는 좀 냉정을 되찾았으면 한다. 아직도 힘과 강자의 오만,야만이 춤추는 국제정치질서에서 '도덕'만으로 생존을 구할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애쓴 나라들,독일과 프랑스,러시아와 중국을 믿고 50여년간 우리의 생존을 맡겨온 미국과 등을 질 것인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국익은 무엇인가. 단순한 실리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상황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생존의 문제가 우리 앞에 있다. 국익을 내세워 이중플레이하는 정치인들 행태보다는,생존의 위협을 받는 위기에 처한 우리의 현실이 이중적이고 모순적이다. 이제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듣고 절차를 거쳐 국회는 동의안을 분명히 처리해야 할 것이다. 반전과 평화를 지향하면서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미국을 도와 명분없는 전쟁 편으로 걸어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 야속하기만 하다. joonh@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