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보기술(IT)업계에 인수합병(M&A)의 파고가 거세다. 경기불황에 따른 자본시장 위축에도 불구,최근들어 굵직굵직한 M&A가 잇따라 성사되고 있다. 소문으로만 그쳤던 지난해까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그동안 머니게임식 투기 성격이 짙었던 M&A가 IT업계의 생존전략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다. ◆봇물 이루는 M&A=한때 국내 인터넷업계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네띠앙 프리챌 싸이월드 등 인터넷 대표주자들의 주인이 최근 모두 바뀌었다. 뚜렷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데다 자금난까지 겹쳐 고사위기에 직면한 탓이다. 3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닷컴업계 불황으로 적지 않은 벤처기업들은 자금줄이 사실상 막힌 상태다. 이 때문에 자금력 있는 업체들에는 지금이 헐값에 기업을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프리챌은 지난 1월 2백50억원에 새롬기술에 전격 매각됐다. 한때 국내 1위 인터넷포털이었던 네띠앙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싸이월드는 최근 나란히 창업투자회사에 팔렸다. 수익모델 부재로 고전해온 네띠앙은 제일창업투자로 대주주가 바뀌면서 자금난을 덜게 됐고 싸이월드도 IMM창업투자에 넘어갔다. 지난해 초까지 국내 1위 개인휴대단말기(PDA) 업체였던 제이텔은 지난달 초 코오롱그룹에 넘어갔다. 국내 최대 서버호스팅(임대) 업체인 호스텍글로벌은 고객관계관리(CRM) 전문업체인 디지엠시스와 합병,수익기반을 다졌고 비젼텔레콤은 e비즈니스 솔루션업체인 아이빌소프트를 인수했다. 국내 대표 소프트웨어업체인 한글과컴퓨터 나모인터랙티브는 경영권 분쟁과 대주주간 지분경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어 M&A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전망=IT업계의 M&A바람은 이제 시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M&A 컨설팅업체인 프론티어M&A의 이성욱 부사장은 "현재 코스닥 등록기업 70∼80% 가량이 직간접적으로 매각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경기와 증시가 회복되면 M&A붐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대형 매물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다 탄탄한 수익을 기반으로 자금력을 갖춘 IT업체들이 M&A에 적극적인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최대 인터넷서점인 예스24가 매물로 나와 있고 모닝365도 매각을 추진중이다. 네띠앙 싸이월드를 인수한 창투사는 수익기반을 다진 뒤 재매각할 계획이다. 인수자로선 NHN 야후코리아 넷마블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이 떠오르고 있다. ◆활력소 될까=경기침체에 따른 수익기반 약화,제살깎이식 경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IT산업이 잇따른 M&A를 계기로 활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실제 최근의 M&A 추세는 몸집불리기나 투기적 성격의 자본이득보다는 시너지 효과를 통해 수익기반을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한글과컴퓨터 나모인터랙티브 등의 경영권 분쟁도 장기적으로는 대박 신화에 멍든 국내 IT업계가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도 제기된다. 하지만 부정적 시각도 존재한다. M&A가 그동안 옥석을 가리는 순기능을 하기보다는 머니게임의 수단으로 악용돼온 탓이다. 이 때문에 M&A 활성화를 위해 관련 규정을 완화하는 것 외에 건전한 목적으로 M&A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를 재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