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후분양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27일 건설교통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긍정 검토'를 지시한 이후 후분양제 도입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후분양제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주택시장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주택건설 금융지원이 전무(全無)하다시피한 상황에서 사업자금을 걱정해야 하는 주택건설업계는 그렇다치더라도 집없는 서민들의 입장에서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아파트 공급방식의 변화는 어떤 식으로든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1998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은 분양가에 질린 서민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후분양제를 바라보는 서민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아파트값은 어떻게 되나'이다. 쉽게 말해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내 집 마련이 지금보다 쉬워지느냐 어려워지느냐'가 서민들이 정책당국에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는 후분양제 도입론자들도 반대론자들도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왜 이 시점에서 후분양제 도입을 서두르는지 의아스럽다. 지금껏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조차도 집값에 영향을 미칠 제도변화에는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도변화를 사실상 주문하고 있다. 그렇기에 집값에 대한 서민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아직은 집값 불안요인이 시장에 잠복해 있는 상태다. 후분양제 논의는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는 느낌이다. 엄밀하게 따지면 선분양제든 후분양제든 정부가 관계법령으로 규정한 제도는 아니다. 시장에서 자생하는 공급방식일 뿐이다. 현행 관계법령 어디를 봐도 '아파트 등 주택은 선분양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70년대 이후 주택시장에서 선분양 방식이 관행으로 정착되자 정부가 소비자 보호차원에서 몇가지 안전장치를 관련법령에 마련한 정도이다. 따라서 작금의 후분양제 논의는 공급방식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꼴인 셈이다. 선분양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공급방식은 70년대 중반 시장에서 공급자와 소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난 이후 지금도 시장에서 건재하고 있다. 선분양 방식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계(契)문화와 정서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꺼번에 목돈을 마련할 수 없는 서민들이 나눠 돈을 내면서 목돈을 만지는 계처럼 2억~3억원이 예사인 아파트 구입비를 나눠 분납하는 형식을 선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선분양·후분양 논의는 크게 실익이 없어 보인다. 그냥 시장에 맡기면 될 일인데 없는 제도를 만들어 가면서까지 부작용을 자초하려는지 모르겠다. 지금도 후분양 방식으로 아파트를 지어 파는 국내 업체들이 있다. 심지어 외국자본을 업고 후분양으로 아파트를 공급하는 업체까지 나오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유리한 공급방식을 택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은 이미 조성돼 가고 있다. 한꺼번에 목돈 마련이 어려운 소비자는 선분양 아파트를,그렇지 않은 소비자는 후분양 아파트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계약금을 내고 아파트를 선분양 받은 뒤 내 집이 완성돼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도 서민들에게는 커다란 낙(樂)이 될 수 있다. 반면 마치 쇼핑하듯 완공된 아파트를 이곳 저곳 둘러보고 하나를 골라잡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게 소비자들이 선택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면 선·후분양의 시비를 가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듯 싶다.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