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산업은 항공.관광산업과 더불어 전쟁이 터지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산업으로 꼽힌다. 악영향 파급 속도 역시 어느 분야보다 빠르다. 전쟁이 발발하면 순수 관광객 뿐만 아니라 구매력이 큰 비즈니스맨들의 외국 출장도 급격히 감소한다. 뉴욕 파리 런던 등 세계 대도시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나 비즈니스 회의가 취소되거나 연기되기 때문이다. 명품 매장이 많은 이들 대도시에서는 여행객이 줄면 곧바로 명품 매출도 줄게 된다. 일반 관광객 감소는 공항 면세점 매출 급락으로 이어진다. 지난 91년 걸프전이 터졌을 때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연평균 10%선을 오르내리던 명품산업 매출증가세는 그 해 3.5%로 급락했다. 지난주 발생한 이라크전이 단기에 끝나지 않으면 91년 걸프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전쟁은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돼 명품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 치명적 결과를 가져올 것이란 얘기까지 나돈다. 에르메스와 같이 "명품 중의 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들은 최고 상류층 단골이 많아 악영향을 덜 받겠지만 대다수 나머지 명품들에는 이번 이라크전은 설상가상의 불운이 아닐 수 없다. 이탈리아의 종합 명품 브랜드 구치와 보석 브랜드 불가리는 경기 둔화 여파로 벌써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카르티에와 반 클리프를 소유하고 있는 리치몬트 그룹도 지난해 매출이 감소했다고 밝혔다. 미국 보석 브랜드 티파니도 이라크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한 이래 매출이 줄고 있어 고심하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공식적 지지를 보낸 이탈리아와 달리 프랑스 명품 업체들은 이라크 위기로 야기된 반미외교의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는 처지다. 미국은 프랑스 명품업계의 거대 시장이다. 세계 곳곳에 다양한 시장을 갖고 있다는 세계 최대 명품업체 LVMH의 경우도 미국 시장이 점하는 비중은 전체 매출액의 27%에 달한다. 지난 86년 미국의 리비아 공격시 영공 통과를 거부한 프랑스는 미국의 프랑스 상품 불매운동으로 곤욕을 치렀다. 95년 프랑스의 핵무기 실험에 대한 반발로 야기된 미국의 프랑스 제품 보이코트는 프랑스 명품업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30.3%나 되는 사상 초유의 매출증가율을 기록했던 갈러리 라파예트 백화점 그룹도 "2003년은 경제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불확실한 해"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라크전이 장기화되면 전체적으로 외국 여행객이 감소하고 특히 미국인 관광객이 격감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최근 "LVMH는 세계 곳곳에 다양한 제품 시장을 갖고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다소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부러 태연한 척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명품업체들의 주가가 곧 하향곡선을 그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제정세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명품업체들은 오직 이번 전쟁이 단기에 끝나길 바랄 뿐이다. 파리=강혜구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