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현대증권 분리 매각 방침을 밝힘에 따라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지배구조 유지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증권이 계열 분리되면 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으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구조의 일각이 무너져 그룹 경영권 방어에도 큰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대증권 분리는 지난 2001년 미국 AIG와의 매각협상이 진행될 때부터 예견돼온 것이긴 하지만 지금은 시기도 좋지 않다는 것이 현대 경영진들의 판단이다. 그동안 건설 하이닉스 석유화학 등이 차례로 그룹에서 떨어져 나간데 이어 현대상선이 대북송금 파문에 휘말리고 현대종합상사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그룹 위상이 크게 추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대를 걸었던 대북사업이 삐걱거리는 가운데 정몽헌 회장의 27일 방북일정마저 취소됐다. 회사측은 "도대체 왜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문제는 그룹의 앞날에 대한 뚜렷한 비전이 없는데다 마땅한 돌파구도 없다는데 있다. 정 회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들은 특검 조사를 앞두고 있고 최근 이라크전쟁과 북한 핵문제 등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어디로 흘러갈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현대증권은 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상선의 1대 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4.9%를 갖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 다른 주주사(7.4%)인 현대종합상사는 자본잠식 상태에서 채권단으로부터 유가증권 매각 압력을 받을 공산이 크다. 이 과정에서 매물로 나오는 주식을 현대가 효과적으로 흡수하지 못할 경우 당장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지난해 하이닉스 주식처분에 따른 손실(8백12억7천만원)을 감당하지 못하고 3백58억원의 적자를 기록함으로써 자사주 매입 여력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