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음은 장터에도 완연하다. 24일 오후 2시 서울 지하철 8호선 모란역. 지하철 역사에서 나오는 순간 장터 근방임을 알 것 같다. 인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걷기조차 힘들다. 행렬을 따라가니 커다란 재래시장이 나온다. 60년대 초반에 생겼다는 국내 최대 5일장 모란장이다. 모란장은 성남 대원천 하류를 복개한 3천3백여평의 공터에 자리잡고 있다. 4와 9로 끝나는 날이면 1천명여명의 상인이 이곳에 장을 펼친다. 야채 과일 생선 등 먹거리는 물론 오리 흑염소 등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평일에 장이 열려도 5만∼6만명이 이곳을 찾는다. 날씨 좋은 주말이면 손님이 10만명을 웃돌기도 한다. ◆봄빛 완연한 장터 "작은 꽃화분이 5천워∼언,큰 건 1만워∼언." 모란장 입구. 울긋불긋한 꽃들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마릴리스 튤립 히야신스 등은 모란장에서 잘 나가는 봄꽃들이다. 물에서 키우는 수죽(水竹)과 줄기가 어른 팔뚝만한 알로에도 인기를 끈다. 손님들은 꽃 구경에 정신이 팔려 마냥 길을 막고 서 있다. 가격을 외치는 꽃장수는 손님들의 호응에 힘이 솟는 모양이다. 화훼장 옆에는 야채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봄동 취나물 돌나물…. 봄나물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주인 여자는 손님과 흥정이 한창이다. "내가 여기까지 왜 오는데.조금만 더 줘." 수지에 산다는 주부 김선영씨(46)는 시금치 한 줌을 잽싸게 봉투에 넣는다. 안된다며 펄쩍펄쩍 뛰던 상인도 결국 손을 들고 만다. 모란장 뒤쪽에 있는 가금류 시장. 병아리떼 삐약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엄마 따라 장터에 나온 아이들은 온갖 손짓을 하며 병아리들에게 말을 건다. ◆볼거리 먹거리 풍성 모란장에는 5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나는 풍경들이 많다. 약장수의 호객소리도 그 중 하나다. 가시오가피 연밥 정력제 등을 파는 약장수는 목 언저리에 마이크까지 달고 약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서민들은 예전에 이런 거 못 먹었습니다.세상 많이 좋아졌어요.술 마시고 담배 피시는 분,밤일이 부실하신 분,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아침이 달라집니다." 건강원 거리 끝에는 양복 바지를 파는 상인이 노점을 차렸다. 상인 뒤에는 원숭이 한 마리가 줄에 묶여 있다. 손님들이 원숭이의 재롱을 보려고 발걸음을 멈추면 주인 아저씨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지 선전을 시작한다. 얼굴이 불그스레 달아오른 50대 아저씨를 따라가 보니 40여개의 포장마차가 손님을 맞는다. 장터의 으뜸은 먹거리라고 했던가. 홍합탕 가오리찜 낙지무침 돼지껍질볶음은 술안주로 잘 나가고 장터국수 만두국은 요깃거리로 인기라고 한다. 경상도 말투의 순대국집 아가씨가 손님에게 삶은 달걀을 권한다. "요즘처럼 힘 빠질 때는예,보신알이 최곱니더.소주 한 병이랑 드셔보셔예." 부화 직전의 달걀을 삶은 것이 보신알. 내키지 않으면 막 수정된 알을 먹으라고 한다. 보신알 안주로 소주 몇잔을 들이키고 나오니 해는 서쪽으로 한참 기울어 있다. ◆불황 극복 안간힘 모란장 상인들은 불황으로 매상이 오르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 장터 사람 수는 예전과 비슷한데 손님들이 쓰고 가는 돈은 많이 줄었다는 것이 상인들의 얘기다. 장터 중앙에서 옷가지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구경만 실컷 하고 그냥 돌아가는 손님이 많다"며 "의류 과일 가금류 쪽이 특히 힘들다"고 말한다. 장터 한켠에서 건강원을 하는 상인도 "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건강은 뒷전인 것 같다"고 푸념한다. 모란장 상인들은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다양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모란장에서는 물건 교환이나 환불을 확실히 하자는 캠페인이 한창이다. 모란장을 알리기 위한 사이트(www.moranjang.org)도 정비하고 있다. 전성배 모란장상인회 회장은 "5일장도 서비스를 현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