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정계에 입문한 이후 15년간 정치적으로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새로운 인재를 발굴,인재풀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며 상호 협력하도록 만드는 독특한 용인술을 써온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발간한 '노무현 핵심브레인'에서 소개된 인사들을 보면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직을 맡기 전까지의 재야운동권 출신 △해양수산부 장관 재직시절 만난 관료 △16대 대통령후보 선출 이후 발탁한 학자그룹 등으로 단계별로 대규모 '수혈'이 이뤄졌다. 노 대통령은 이러한 가운데 "2004년 총선까지의 집권1기에는 순수 대통령제로 운영한 뒤 총선 후인 집권 2기에는 분권형 대통령제 또는 내각제에 준하는 운영을 하겠다"고 밝힌바 있어 내년 총선을 계기로 대대적인 수혈이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또 취임 후 여러 차례 "조직은 탄생과 동시에 개혁의 대상"이라며 핵심브레인들의 인력재배치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임을 예고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끊임 없이 '헤쳐모여'를 반복하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어왔다. ◆어려울 땐 스스로 살아남는다 청와대 서갑원 의전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지난 96년 15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시자 이광재 국정상황실장과 함께 종로구 청진동에 '소꼽친구와 불알친구'라는 카페를 열어 후일을 도모했다. 그러나 선·후배들의 '외상술' 덕분에 재미는 못봤다. 이호철 민정1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92년 14대 총선에서 패하자 부산으로 낙향,입시학원을 운영했다. 그는 이를 밑천삼아 부산대 앞에서 배낭여행 전문상품을 파는 여행사 지점도 차렸다. 이강철 전 조직특보는 부인이 대구에서 횟집을 냈다. 수간호사 출신인 부인의 월급으로 이 특보를 뒷바라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횟집은 노 대통령 측근들의 '아지트'로 애용됐다. 노 대통령도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멤버들과 "직접 돈을 벌어 정치를 하자"며 서울 역삼동에 고깃집 '하로동선'을 운영한 적이 있다. ◆때가 되면 모인다 측근들의 이같은 '외도'는 노 대통령의 선거출마와 동시에 막을 내린다. 노 대통령이 '정신적 형제'라고 소개하는 이호철 민정1비서관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 선거때면 나타나 돕는 대표적 '수호천사'였다. 92년부터 인연을 맺은 서갑원 의전비서관은 노 대통령의 잇따른 낙마에 96년 한나라당 황규선 의원 보좌관으로 잠시 떠났으나 98년 서울 종로구 보궐선거때 보좌관직을 사표내고 캠프에 합류했다. 이광재 국정홍보실장도 한때 다른 '주군'을 섬긴 전력이 있다. 95년 조순 서울시장 후보를 도왔으며,96년 신한국당 대권후보 경선당시 김덕룡 의원 캠프에서 일했다. 김만수 보도지원비서관은 노 대통령이 92년 14대 총선에서 패하자 3년간 원혜영 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