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테스코 홈플러스가 지난 6일부터 1천개 품목에 대해 평균 10%정도 가격을 내리면서 촉발된 할인점 업체간 가격파괴 경쟁이 현재 유통업계의 큰 이슈가 돼있다. 전쟁 분위기가 지구촌을 휩쓸어 소비심리가 잔뜩 움츠린 가운데 나온 초강수 전략은 경쟁업체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선두업체인 이마트가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이마트는 "최저가격신고보상제"를 실시하는 까닭에 홈플러스와 동일한 상품이라면 최저가로 팔지않을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롯데마트도 홈플러스와 경합하는 전국 7개 점포에서 매일 가격을 조사,조정하는 번거로운 작업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우리나라 메이저급 할인점들이 이처럼 가격파괴전에 나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할인점의 경쟁력 원천이 "싼 값"이기 때문이다. 싼 값은 바로 할인점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 대원칙을 제시한 기업은 바로 미국의 월마트이다. EDLP(Everyday Low Price)가 바로 그것. 어쩌다 한번씩 싸게 파는게 아니라 일년 3백65일 싸게 판다는 얘기다. 할인점의 정체성을 집약한 말이다. 따라서 최근의 가격인하 경쟁은 할인점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할인점(디스카운트 스토어) 원조 나라인 미국에서도 월마트와 K마트를 중심으로 가격파괴 전쟁이 지난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격렬하게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월마트는 K마트를 추월했고 P&G와 같은 거대 제조업체들로부터 가격주도권을 쟁탈할 수 있었다. 최근 홈플러스가 불을 지핀 가격파괴 대상품목은 일단 1천개이다. 보통 할인점이 취급하는 상품가짓수가 3만~4만개임을 감안하면 2~3%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가격인하 경쟁이 주는 파장은 적지않다. 유통업체들의 경영효율과 자체상표(PB)상품 개발 강화,상품해외소싱 등 비용절감을 촉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할인점간 과당경쟁이 일어날 경우다. 할인점에 납품하는 제조업체들은 행여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할인점간 지나친 가격경쟁이 제조업체에 대한 숨가쁜 압박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할인점이 가격을 지속적으로 내리는 것은 소비자나 국가경제 전체에 좋은 일이다. 그러나 가격인하가 힘으로 납품업체를 찍어누른 결과물이라면 곤란하다. 한계에 부딪친 제조업체들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품질을 낮추는 것 밖에 없는 까닭이다. "천천히,그러나 꾸준히" 내려가야 좋은게 가격이다. 제조업체나 유통업체나 원가절감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