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12:07
수정2006.04.03 12:08
검찰이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을 발표해 시장이 크게 출렁거렸다.
더불어 현 정부의 경제정책 집행 방식과 내용에 대한 논쟁 또한 격화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한국판 엔론사건'이라며 가뜩이나 불안한 우리 경제를 위기국면으로 떨어뜨릴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반면 다른 일부에서는 이번 일을 구실로 개혁의 강도와 속도를 늦춰선 안되며,오히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이 한국 증시의 구조적 취약성인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을 개선할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한다.
물론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기(長期)란 결국 수 많은 단기(短期)들이 끊임없이 이어진 결과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개념 중 '경로의존성(path-dependence)'이라는 것이 있다.
이 개념이 설명하는 바는 경제가 단기적으로 어떤 경로를 따라갔느냐에 따라 장기의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 정부가 집행하는 경제정책들은 비단 단기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소비 및 설비투자 위축,경제정책의 불확실성 그리고 이라크전쟁 가능성과 북한 핵문제라는 지정학적 상황 등 대내외적 리스크가 급증함으로써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다.
이번 사건은 이를 더욱 심화시켜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심각히 훼손할 수 있다.
더욱이 가계대출 확대로 인한 가계부실 문제가 개인뿐 아니라 금융부문 전체에 대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은 한국기업의 회계 불투명 문제를 다시 부각시켰다.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연일 급등했고,무역수지 적자 전환,외국인들의 대한(對韓)투자 기피,노사분규 악화 가능성 등 희망적인 경기예측지표를 찾아 볼 수가 없다.
특히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로 인해 다른 나라 통화들이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과 달리 유독 원화가치만 하락하고 있는 점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에 유리하게 되므로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있으나,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외채가 적지 않은 우리 경제로서는 원리금 상환부담이 증가하게 되고,원·달러 환율에 비해 원·엔 환율의 상승폭이 커지면서 엔화대출자들이 환차손 리스크에 노출되고 있다.
이것은 국제금융시장이 한국경제에 대해 경고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같은 경제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북정책 △분배중심의 경제정책 △재벌 개혁정책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분배중심 정책은 경제위기 해소에 관해 유용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이는 대북문제에 관한 한·미간의 입장 차이가 금융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들고,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과거 경제성장의 동력이었던 재벌은 '개혁 대상'이라기보다 '개선의 대상'으로 해야 한다.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개혁 정책은 얼마 가지 못해 '개혁피로증'을 유발할 수 있다.
금융자본중심의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다는 재벌 개혁이 오히려 금융시장의 불안을 야기해선 곤란하지 않은가.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말처럼 급속히 개혁하다가 국민경제 전체를 악화시키고,국가신인도를 하락시키며,결과적으로 민생을 어렵게 만드는 잘못을 범한다면 그러한 정책은 가까운 장래에 국민의 지지를 잃을 것이다.
이는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고만 김영삼 정부의 강력한 사정정책과 김대중 정부 개혁정책의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에는 실물·금융부문의 동반 악화로 인해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다.
이러한 먹구름이 걷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경제여건이 개선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섣부른 조치를 취해 먹구름은 걷어 내지 못하고 엄청난 폭우만 불러오는 비극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hahyunjo@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