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사태가 정부의 중재로 발생 63일 만에 극적으로 타결돼 노사현장은 일단 안정을 찾았지만 임·단협을 앞둔 다른 사업장에는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노사가 받아들인 정부의 중재안이 지금까지 노동부가 행정지침을 통해 권고했던 무노동무임금,불법파업에 대한 손배소·가압류,불법파업자 해고 원칙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기 때문이다. 두산중 사태는 노동계와 경영계의 대리전 양상으로 전개된 데다 새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시각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어왔다. 그러나 이날 중재안은 노사의 균형을 완전히 깨고 노조측의 손을 들어줬다고 볼 수 있다. 이날 타결안은 △해고자 18명 중 5명 복직 △개인손해배상 및 가압류 해제 △조합비 가압류 40% 적용 △파업기간 중 무노동무임금 적용분 중 50% 생계비 보전차원에서 지원 등 대부분 노조측에 유리한 조항들이다. 노동부 내에서조차 DJ정부 때라면 회사측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획기적인 중재안이라고 비난할 정도다. 한마디로 이번 타결은 새정부의 '압박'에 의한 회사측의 울며 겨자먹기식 수용으로 노조가 완전승리를 쟁취한 셈이다. 그러나 이번 타결은 정부가 노사현장의 원칙과 룰을 스스로 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98년 노동법 개정 이후 산업현장에 노사간 힘의 균형과 룰이 정착돼가는 시점에서 이를 뒤엎는 정부의 중재안이 나와 노사현장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해고자 복직,무노동무임금,손배소 문제는 노사 협상테이블에 단골메뉴로 등장해온 핵심 쟁점사항이어서 단체협상을 앞둔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 강경 노조들이 향후 벼랑끝 전술을 시도할 가능성을 열어둔 점 등은 이번 두산중 사태의 부정적인 측면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노동계의 파업에 대항할 무기들이 '무용지물화'되는 선례를 남김으로써 앞으로 노사현장은 자칫 분규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다. 노조의 기대심리를 높여 파업 등 집단행동을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노동자편에 서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기 때문에 일선 사업장 노사협상에서 사용자보다는 노조측의 목소리가 힘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노사 자치주의를 표방한 새정부가 노사문제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원칙이 없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는 마치 '축구시합에서 손으로 골을 성공시킨 격'으로 정부가 사안에 따라서는 언제든지 스스로 노사 자치주의를 깰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두산중 사태는 당초 노조원 분신을 계기로 비롯됐으나 노조원들의 동력이 상당히 떨어지고 상급단체 주도로 진행되는 등 노조측의 절대 열세로 평가됐었다. 그러나 새정부가 출범하면서 노사 세력 균형을 강조하고 두산중 회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밝혀지면서 노조측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결과를 낳았다. 두산중공업은 87년 노조 설립 이후 총 29회 3백여일 이상 파업이 발생했다. 회사측은 공기업 시절 만연해 있던 모럴해저드와 수십 차례 반복됐던 잦은 파업관행을 이번에 뿌리뽑으려다 실패했다. 노동부의 중재로 사태가 해결됐지만 노동계의 기대심리가 높아진 데다 다른 사업장 노조도 비슷한 사안을 협상테이블에 내놓을 것으로 보여 올해 노사현장은 상당히 불투명한 상태다. 앞으로 정부가 아무런 원칙도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노동정책을 펼칠 경우 노사현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겪을 수도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