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저평가된 한국 증시의 재평가(Re-Rating)를 논했다. 하지만 상황은 1백80도 변했다. 지금은 한국시장이 할인(Discount)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얘기하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리서치담당 임원의 얘기다. 올들어 아시아지역에서 주가가 가장 많이 떨어진 한국 증시의 하락세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임박했고 북핵사태는 악화일로다. 이같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가계부실과 신정부 출범에 따른 정책 리스크 등 대내적인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대표종목의 급락 릴레이 한국 증시 간판종목들이 주가 급락 릴레이를 벌이고 있다. SK텔레콤이 지난 1월말 W-CDMA(3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과도한 투자방침이 논란을 빚으며 급락했다. 반등 기미를 보이던 삼성전자 주가도 D램값 하락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달 24일 이후 가파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같은 주가하락 현상은 세계적인 철강 공급과잉 등에 대한 우려로 포스코로 옮겨붙더니 5일에는 수출 및 내수부진에 대한 우려로 현대자동차에까지 전이됐다. 현대차 주가는 이날 7.51% 떨어졌다. 교보증권 임송학 리서치센터장은 "일부 종목별로는 패닉(panic:공황)을 느낄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겹겹이 쌓인 악재 SK투신운용 장동헌 주식운용본부장은 "업종 대표주의 연쇄 급락은 한국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 증시 안팎에는 악재 투성이다. 증시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과 북핵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표현되는 외환(外患)에 가계부실 심화와 그에 따른 소비심리 둔화, 신정부의 재벌개혁 등 내우(內憂)에 포위돼 있다. 한 투신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전세계적으로 증시의 장기침체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펀드매니저들이 개혁을 시작한 나라에서 돈을 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 전쟁 이후도 고민 서울투신운용 이기웅 주식운용본부장은 "이라크전 개전 후 국내외에선 본격적인 경기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증시 하락의 밑바닥에는 전쟁 이후 경기에 대한 비관론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본부장은 "유가가 전쟁 이후에도 상당기간 높게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데 국내경제는 유가상승에 매우 취약하다"며 "작년에 기업실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기업이익 측면에서의 모멘텀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SK투신 장 본부장은 "수출이 버텨주고 있지만 내수 쪽이 급랭하는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수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내수마저 무너질 경우 증시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는 설명이다. 교보증권 임 센터장은 "이라크 전쟁 후에도 경기가 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돼 가고 있다"며 "IT(정보기술)쪽이 살아나지 않으면 전체 주식시장도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박민하 기자 haha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