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해냈다]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 (5) 헬스케어 종합그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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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이겨낸 그 힘과 정열로 새로운 '청년 보령'을 세우고 다져나갑시다"
보령제약 안양공장의 수해복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던 77년 10월1일,김승호 회장이 창립 14주년 기념식에서 직원들에게 '청년 보령'이란 슬로건을 제창한다.
김 회장은 "청년정신을 강조하고 싶었던 대상은 다름아닌 나자신이었다"며 "보령인들 앞에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어떤 시련과 도전도 당당히 맞서 나가는 진취적으로 창조적인 청년 경영인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말한다.
김 회장은 그러한 의지로 새로운 영역과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해 나갔다.
79년 유아의 스킨케어제품과 수유기 등을 생산하는 보령장업(현 보령메디앙스)을 자회사로 설립해 헬스케어종합그룹 '보령그룹'의 첫발을 내딛었다.
같은해 멕시코에 항생제 합성 기술을 수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겔포스를 대만과 동남아시아에 수출,완제의약품 수출의 길을 열었다.
82년에는 보령제약 중앙연구소를 설립,신약 개발과 고급 인력 양성에 박차를 가했다.
사업다각화와 수출 확대 등으로 착실한 성장을 이뤄나가던 80년대 중반 김 회장에게 또다른 시련과 도전이 닥친다.
선진국형 특허제도인 물질특허가 도입되면서 보령제약의 사활이 걸린 국제특허분쟁이 발생하고 만것이다.
보령제약 중앙연구소는 84년 고혈압 치료에 효과적인 물질인 '캡토프릴'에 관한 세가지 새로운 제조공정을 개발했다.
보령제약은 이 제조방법에 대한 특허를 한국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스페인 대만 등에 잇따라 출원,이들 국가에서 모두 18건의 특허를 취득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86년9월 첫번째 제조방법 특허가 특허청에서 공고되자 캡토프릴관련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미국 제약사 스퀴브가 이의를 제기했다.
'보령제약의 제조방법에는 신규성과 진보성이 결여돼 있고 실시가 불가능하니 특허를 인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분쟁은 법정과 통상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스퀴브는 88년2월 서울 민사지방법원에 특허권침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같은 해 4월 미국 통상법 301조에 의거 한국 정부에 보복조처를 요구하는 청원을 미 무역대표부에 제출했다.
김 회장은 이러한 공세에 당당히 맞섰다.
제조방법의 기술적 특징을 설명하고 여러 선진국에서도 특허를 취득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스퀴브사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결국 스퀴브사는 90년에 특허침해소송을 스스로 취하했다.
김 회장은 "4년여에 걸친 버거운 싸움끝에 얻어낸 특허 분쟁승소를 통해 보령제약의 기술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며 "이를 계기로 보령제약은 국내 제약사 가운데 국제 특허를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