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자 셋이서 노래방엘 갔다. 첫째 여자와 셋째 여자의 나이 차이가 12살, 셋째 여자와 둘째 여자의 나이 차이가 5살이니, 선곡도 꼭 이만큼씩 차이가 났다. 저마다 우울한 사정들도 있었는데, 첫째 여자는 일 때문에, 둘째 여자는 사랑 때문에, 셋째 여자는 불안한 미래 때문이었으니 그것도 나이 차이 만큼이었다. 이런 세 여자가 나이를 극복하고 하나가 된 것은 만화 주제가 때문이었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캔디)' '어렵고 슬프지만 굳세게 산다(빨강머리 앤)' '두 팔을 벌려 앞으로 뻗어(로보트태권브이)'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용감하고 씩씩하게 잘도 싸운다(마린보이)'…. 신기하게도 모든 만화 주제가에는 '힘차게!' 혹은 '용감하게!'라는 가사가 들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이런 가사를 들으며 힘차고 용감해지겠다는 꿈을 키웠던 것 같다. 그날, 세 여자는 갑자기 힘이 생기고 용감해지더니 비가 내리는 데도 우산도 쓰지 않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살다보면 용감해져야 하는 일들이 많다. 곤두박질치는 주가는 용감하게 기다려야 하고, 밤길에 만나는 도둑고양이는 용감하게 피해야 하고, 뒤통수를 친 인간은 용감하게 앞통수를 마주 쳐주고, 가끔은 모든 것을 제끼고 불현듯 차를 돌려 정말로 용감하게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 그럼 그곳에서 우리는 '무쇠 팔, 무쇠 다리, 로케트 주먹'을 단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그는 '마징가 제트'로 불리는 기운센 천하장사이며, 무쇠로 만든 사나이로, 정말로 로봇이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 시절로 돌아간 우리는 강아지가 짖는 것만 봐도 웃고, 슬픈 일은 사탕 하나로 잊어버릴 것이다. 걸음걸이는 아주 씩씩해질 것이며 저마다의 상처 또한 용감하게 회복할 것이다. 삐었든 까졌든 데었든, 비를 맞으며 용감하게 밤길을 걸어왔던 것처럼…. 아무도 교통신호를 지키지 않는 컴컴한 대로에서 혼자 파란 불을 기다렸던 그 인내심으로…. < rururara222@yahoo.co.kr > ----------------------------------------------------------------- 한경에세이 필진 1일부터 바뀝니다 한경에세이 3∼4월 집필은 전광우 우리금융그룹 부회장(월), 최영락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화), 정규수 삼우이엠씨 회장(수), 백낙환 인제대.백병원 이사장(목), 권용욱 노방의원 원장(금), 방송작가 이향희씨(토)가 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