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제16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틀이 지나서야 각 부처 장관의 인선이 이루어졌다. 이처럼 새 대통령의 취임이 있은 후에야 허겁지겁 내각이 구성되는 것을 보고 때마침 우리나라를 방문 중인 유럽의 한 행정학자는 크게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미 선거과정에서부터 정당별로 '예비 내각'을 구성해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정책의 현실성과 인물의 적합성을 모두 검증하는 서구 나라들과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직선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가 국회 인준을 얻고 난 다음에 비로소 각료들을 제청해야 하는 제도적 특성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는 변명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새 대통령의 취임 후에야 겨우 구성된 내각은 국정 준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그 구성원들간의 팀워크 역시 부족할 수밖에 없어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는 조직구조와 인사면에서 과거와 얼마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청와대 조직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 정책분야별로 수석실을 두어 각 부처를 몇개씩 나누어 관장하던 방식을 지양하고,정책실장 밑에 중요한 정책사안들을 관장할 팀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각 부처 장관이 내각을 중심으로 국정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비중이 좀더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청와대의 직위와 조직이 확대되는 것을 보면,청와대가 여전히 국정운영의 중심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정책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면에서도 과거의 정부들과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소위 '외인부대'로 지칭될 만큼 직업공무원 출신이 아닌 새로운 인사들이 대거 청와대에 진입한 데 이어 내각의 경우도 정부내부의 공직자보다는 사회부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사들이 대거 등용되었다. 새로운 인물이어야 반드시 참신한 정책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겠으나,최소한 노 대통령과 정책이념을 같이 하는 인사들이 대거 정무직에 등용된 점에서 19세기 초 미국에서 잭슨(Jackson) 대통령에 의해 발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대중적 민주주의의 요소가 일부 도입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같은 청와대와 내각의 조직구조 및 인사상의 특성을 감안할 때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이 지향하는 정책이념을 설정하고 그것을 추진하는 데 있어 필요한 기본 요건을 일단 마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21세기에 선출된 첫번째 정부로서 노무현 정부에는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그리고 새로운 방식에 의해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갈 것을 요구받고 있기도 하다. 이와 같이 시대적으로 부여된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안배나 연공서열 등 기존의 관행보다는 정책이념에 대한 동질성과 충성심을 갖춘 인사들로 핵심행정부를 구성하는 잭슨식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면이 있다. 그러나 모든 제도의 장점 이면에는 단점이 있는 법이다. 청와대와 내각에 대통령과 정책이념을 공유하는 인사들의 비중이 높은 그 만큼 집합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의해 다양한 의견들이 수용되기보다는 획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이른바 '집단적 사고 증후군'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 구성원간,각료들간,그리고 청와대와 내각간에 개방적인 의사소통과 투명한 협의과정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관료제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새로운 정책이념을 제시하고 개혁을 추진하려는 개혁가들에게 지속성과 안정성을 기본 속성으로 하는 관료제는 장애 요인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념을 지향하는 정권도 관료제의 도움 없이는 소기의 목적 달성이 어려운 법이다. 관료제는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라,힘을 합해 나아가야 할 '동지'인 셈이다. 관료제의 할거주의나 집단이기주의는 극소화하되,공익 추구라는 공동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그것이 지닌 도구적 합리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행정개혁의 방향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ydju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