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학을 앞둔 딸 현진양(19)을 잃은 대구시청 총무과 직원 이달식씨(45)는 불길 속에서 어머니에게 휴대폰으로 "안돼.안돼…"라며 죽어간 딸의 모습을 떠올리며 실종자 가족 대기실에서 통곡의 3일을 보냈다. "엄마,도저히 못 참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 대구대 경영·회계·보험학과 2년 이희정양(21)의 어머니도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다. "시신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4일째를 맞아 1천여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넋을 잃은 채 오열하고 있다. 대구시민회관에 마련된 실종자 가족대기실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담요 한 장으로 사흘밤을 지샌 이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지금까지 신고된 실종자는 3백80여명에 이르고 있으나 월배차량기지에 견인된 1080호 전동차 안에 있는 미확인 시신은 79구밖에 안된다는 소식에 실종자 가족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일부 실종자는 허위 신고된 허수일 거라는 소문까지 나돌아 분노가 치밀지만 실종된 가족을 내다보일 수도 없는 이들의 가슴은 더욱 미어진다. 지난 20일 지하철공사가 사고 당시를 녹화한 CCTV 테이프를 공개해 실종된 가족이 보일까봐 눈이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흐린 화면 속엔 연기만 자욱해 더 이상 확인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방화 용의자의 다리에 붙은 불을 승객들이 꺼주는 장면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어 주먹을 불끈진 채 모니터에서 눈을 돌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시신 확인작업을 시작한 지 3일이 됐으나 신원 확인이 된 시신은 한 구도 없어 가슴만 답답할 뿐 소리내 우는 데도 지쳤다. 실종자 가족들은 하루 3~4명씩 시신 확인작업 현장에 번갈아 다녀오지만 시원한 소식은 없는 상황이다. 대구=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