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개혁'이라는 큰 테마가 새 정권 출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가 되었듯이,재벌 개혁의 각론에 해당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라는 이슈도 5년 주기로 나타난다. 하지만 같은 이슈라도 배경은 달라 접근방식도 차이가 난다. YS정권의 재벌개혁은 산업합리화나 산업구조개편에 가까운 것으로, 재벌그룹별 산업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또 개방과 규제완화라는 포장으로 각종 인허가사업권이 풀려 종금 보험 등 신규사업자가 등장해 제2금융권시장의 경쟁이 심화되고,이 과정에서 재벌그룹의 금융권 지배력도 확대됐다. 반면 DJ정권의 재벌개혁은 IMF의 질곡 속에서 추진됐던 적자생존의 강제집행이라고 볼 수 있다. '적자'의 기준으로 투명성,부채비율을 중심으로 한 재무구조개선 및 지배구조의 변화를 요구했고,그 실행방안의 하나로 재벌그룹의 제2금융권 소유제한을 들고 나왔다. 즉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해 산업자본의 부실이 금융자본으로 연계되는 고리를 차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제 막 출범하는 노무현 정권의 방향은 어떤가. 지금까지 나타난 노무현 정부 입장은 재벌의 금융회사 지배를 막고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시키자는 것이고,이를 위해서는 소유구조를 제한하는 조치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은 분리돼야 하는가 하는 당위성을 '분리주의자'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재벌그룹이 금융회사를 지배하면 그룹의 자금창구역할을 하게 되고,그래서 자금 또는 자본의 독식현상을 초래한다. 즉 사금고화 현상이다. 실제로 내부자 거래로 알려진 동일그룹내 계열사간의 자본 및 실물거래 규모는 엄청 컸던 것도 사실이다. 둘째,산업자본의 부실이 고스란히 금융자본에 전가됐거나,재벌그룹의 금융회사가 부실화됐을 경우 재벌그룹은 그 손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해결책은 오로지 공적자금 투입이었다. 셋째,지배구조의 교묘한 프레임 속에서 소액의 지분을 갖고도 경영 인사 등 지배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이다. 이같은 '피해'는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경제적 손실의 책임이 그 경제적 주체에 돌아가지 않아 국가나 국민 경쟁기업에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 분리의 논리에는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IMF를 겪으면서 그 같은 현상을 경험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식에는 무리가 있고,교각살우 위험성도 있다. 지금까지 논의되어온 해법으로는 금융사 계열 분리청구제와 재벌의 금융회사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이 있으며,보험회사의 경우 대주주의 자격요건을 명시하자는 의견도 있다. 기본적으로 소유구조를 제한하는 것은 자칫 어느 특정 재벌그룹의 진입을 제한하는 불공정한 조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준을 높일 경우는 몇몇 재벌회사만 해당될 것이고,기준을 완화할 경우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유구조를 제한하는 방식은 원칙의 설정과 객관적인 타당성을 얻기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산·금의 분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법 제정 등 하드웨어적 처방보다 소프트웨어적 보완대책이 바람직하다. 소위 5+3원칙 중 추가 3원칙, 즉 순환출자 억제 및 부당내부거래 차단과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등이 제대로 지켜지게 감독 감시를 강화하고 인수자금의 투명성 조사,금융권 인사제도 개선을 통해 실질적으로 산·금의 분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경영의 투명성 요구가 점점 거세지는 현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사금고화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될 것이며,직접금융이나 해외금융 등이 용이해지고 비용면에서도 훨씬 유리하므로 금융회사의 재벌그룹 창구역할은 그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또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꼬리표를 달아 구분한다는 자체가 기업의 건전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오히려 산·금이 적절히 배합되면 기업의 재무건전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세계적 기업인 GE의 경우 수익의 40%가 소위 산업자본에서 발생하며,다른 40%가 금융자본에서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조화를 이룰 때 기업 경쟁력은 높아지고 기업가치는 올라간다. kbkim@mondex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