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대통령비서실장은 스스로 "기자만 만난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현 정부내에서 어느 누구보다 기자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전·현직 청와대출입기자는 물론 국회출입기자,간부급 기자에 이르기까지 점심이나 저녁식사에 초대해 국정현안을 설명하는 자리를 꾸준히 마련하고 있다. 임기를 보름여 남겨놓은 최근에도 그의 수첩은 언론인들과의 스케줄로 꽉 차있다. 그런 그에게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그가 기자들과 만나 현 정부의 치적을 알리기 위한 '홍보성 발언'을 하고나면 뒤탈이 나곤 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5일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지난 1월)무디스가 방한했을 때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추려고 했는데 재정경제부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측이 적극적으로 대처해 신용등급 하락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국가신용등급이 해외이자 부담 5억달러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 핵문제가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상선 대북송금 파문이 확산될 경우 국가신인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은연중 시사한 듯 했다. 그런데 그의 말이 있은 지 1주일도 안된 11일 무디스는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무디스가 그의 발언을 즉각 부인하고 나선 것과 무관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박 실장의 징크스는 지난해 6월말에도 있었다. 박 실장은 월드컵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당시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월드컵의 성공은 햇볕정책에 따라 남북관계가 개선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만약 서해상에 어선 몇척이라도 내려왔다면 월드컵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겠느냐"고 현 정부의 치적을 홍보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의 말이 있은 지 1주일도 안된 6월29일 전국민을 경악케 한 북한의 서해도발사건이 터졌다. 물론 무디스가 부정적 전망을 내놓은 것이나 북한의 서해도발이 그의 말과 관계 있으리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오비이락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적어도 중요한 자리에 있는 공직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되짚어보게 한다. 이재창 정치부 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