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sh@hitel.net 외과에 입문후 처음 들은 말이 '외과는 지식과 기술'이라는 격언이었다. 전공의 시절 의학적 지식의 습득과 더불어 수술의 술기를 익히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학습의 과제였지만 아직 익숙지 못한 때에 할 일은 태산이고,도무지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아무 생각 없이 몸만 바쁘게 지내기가 십상이었다. 그래서 일하는 데는 병신,먹는 데는 걸신,잠자는 데는 귀신,소위 '삼신'으로 불리며 산적한 일감에 동분서주하다 조금 익숙해지면 수석 전공의의 감독아래 밤에 세칭 맹장수술을 전수받아 하게 되는데,그때의 그 짜릿한 성취감은 가히 격무의 피로를 씻어주고도 남았다. 그러나 정작 외과의사로 입문하는 집도식은 그 후에 이뤄지는데,그때 긴장했던 기억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수술실로의 호출로 불려가니 과장님이 조수석에 서서 충수절제술을 집도하라고 명하셨다. 연례행사로 이어져 오는 전통임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 잔뜩 긴장한 나머지 원칙을 무시해 과장님께 지적을 받고 식은땀을 흘린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 내 딴에는 수술상처를 작게 하려고 2㎝ 남짓 절개하고 빨리 끝내려고 서두르다 심각하게 지적당한 것이다. 그때 과장님의 한마디,"great surgeon은 big incision이다." 충분히 절개해야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고,그래야 결과적으로 더 빨리 마칠 수 있다는 충고였다. 그때는 물론 식은땀 흘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실감하지 못하고,여전히 작게 째고 빨리 수술하려다 몇 번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후 수술할 때마다 항상 "great surgeon은 big incision이다"는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영국에 연수 교육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병원 수술실에서 세 번 놀랐다. 먼저 엄청나게 크게 개복하는 것에 놀랐고,손재주가 현란할 정도로 좋아 놀랐고,수술 후 합병증이 거의 없이 경과가 좋아 놀랐다. 역시 "훌륭한 외과의사는 크게 짼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환자 입장에서는 몸에 상처가 크게 나는 것을 좋아할 리 없으니 상처를 작게 만드는 의사를 유능한 의사로 평가할는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고생해 본 사람은 알게 될 것이다. 훌륭한 외과의사는 크게 짼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