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생체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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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한국여권은 5백만원에 거래되는데 미국 비자가 있으면 1천만원,일본 비자도 있으면 1천2백만원은 받는다는 얘기다.
여권 재발급은 석달쯤 걸리지만 그 돈이면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으므로 팔고서 분실 신고하면 된다는 것이다.
여권을 조심하라는 말 끝에 하는 농담이지만 그만큼 여권 위ㆍ변조가 성행한다는 걸 뜻하는 셈이다.
여권 위ㆍ변조는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골칫거리다.
때문에 9·11테러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선 여권 위조 및 그에 따른 테러나 불법이민 방지를 위해 생체여권 도입 논의를 본격화했다.
생체여권이란 여권에 지문 홍채 얼굴모양 등 신체 정보를 담은 칩을 붙여 쉽고 빠르게 신원을 확인하도록 만든 걸 말한다.
미국이 내년 10월부터 생체인증 여권이 아니면 비자 상호면제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는 쪽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일본정부가 이르면 내년 11월부터 생체여권을 발급한다는 소식이다.
지문은 빼고 홍채와 얼굴 모양 정보 등을 담을 예정이라는 보도다.
국내엔 '패스21 사건' 이후 알려졌지만 생체정보를 이용한 솔루션은 이미 상당한 단계에 이른 듯하다.
지난해 4월 미국 시애틀의 한 슈퍼마켓에서 지문인식기 위에 손만 올리면 결제가 가능한 '지문인식 지불 승인 시스템'을 도입한 게 한 예다. 국내에서도 세넥스 테크놀로지가 홍채인식 기술을 이용해 신용카드 인증 및 여권조회 솔루션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생체인식 시스템은 세계 각국이 앞다퉈 개발하는 만큼 우리도 뒤질 수 없는 분야라고 한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이 '바이오메트릭 테스트랩'에 생체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도 생체인식 시스템 평가를 위해 불가피한 까닭이라는 것이다.
생체여권 외에도 보안과 편리함을 위해 각종 생체인식 시스템이 나올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문명의 모든 이기는 편이성과 위험을 함께 지니는 만큼 무작정 거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누군가 내 생체정보마저 도용한다면 그땐 내가 나인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