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수 LG칼텍스정유 회장은 LG그룹 오너의 일원이지만 학교와 기업에서 한 우물을 판 대표적인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지난 66년 연세대 화공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5년 뒤인 71년에 위스콘신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위 논문은 고분자의 조직구조에 관한 것. 허 회장은 73년까지 미국 세브론 연구소에서 경력을 쌓은 뒤 국내 정유업계에 투신했다. 호남정유(현 LG칼텍스정유)사장-대한석유협회 회장-LG에너지 회장-LG칼텍스정유 회장으로 이어지는 그의 화려한 이력은 고된 유학시절 탄탄하게 다진 이론적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허 회장은 "하루 3시간씩 잠을 자며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었던 경험들이 인생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고 말하고 있다. 박사 출신 CEO들이 각광받는 시대가 다가왔다. 고학력 사회의 당연한 "풍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실 "공부 잘 한다고 경영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 수의 박사 CEO들은 유능한 경영자로서 갖춰야할 자질을 키우기 위해,즉 도중에 "필요에 의해" 공부를 하고 학위를 땄다. 허 회장처럼 미리 학위를 취득한 뒤 기업에 몸을 담는 경우는 전공을 살리는 쪽으로 업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입사후 박사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지난 88년 인하대에서 "인사 의사결정에서의 인지과정에 관한 연구"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항공 전무로 재직하던 시절 "예비 총수"로서 일종의 경영수업을 받은 셈이다. 조 회장은 이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대한항공 특유의 시스템 경영체제를 구축했다. 김동진 현대자동차 사장은 미국 핀레이 공과대학 박사(88년)출신이다. 지난 79년 현대정공 기술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유학길에 올라 기계공학 분야의 학위를 땄다. 그 뒤 현대우주항공 사장을 거쳐 지난 2000년 엔지니어 출신으로는 처음 현대차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현대정공에서는 전차,우주항공에서는 항공기,현대차에서는 승용.상용차 사업을 담당함으로써 "움직이는 기계"분야에서 이론과 경영 실무를 완벽하게 겸비한 인물이 됐다. 제진훈 삼성캐피탈 사장은 지난 74년 제일모직에 입사,삼성물산 전무로 승진한 97년 한양대에서 석사 학위를, 삼성캐피탈 사장시절인 2001년 8월 숭실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획과 경영지원 업무를 오랫동안 했던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학위를 땄다는 후문이다. 양흥준 LG생명과학 사장 역시 지난 78년 LG화학에 입사한지 11년 뒤인 89년 미국 위싱턴대학에서 생물공학 박사가 됐다. 분할전 LG화학의 기술전략 신사업 등을 담당하다가 지난 8월 생명과학 전문회사가 설립되면서 초대 CEO를 맡았다. 생명과학 산업에 대한 오랜 식견과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미래의 승부처인 생명과학 사업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청남 한화S&C 사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변화를 즐겨라"라고 얘기하듯이 스스로도 다채로운 경력을 자랑한다. 그는 한화가 기업구조 고도화와 전문화를 위해 박사급 고급인력을 스카웃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영입된 전기공학 박사 출신이다. 76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화신쏘니 금성사 지멘스등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다가 85년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뉴저지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그는 96년 한화로 옮겨 정보통신 분야의 일을 해오다가 2001년 한화S&C 사장이 됐다. 이동호 대우자동차판매 사장은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이 그룹 인재육성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유학을 보낸 인물이다. 지난 91년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아 돌아온 뒤 가는 점포마다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입사전 박사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디지털미디어 네트워크 총괄)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지난 83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IBM 와슨연구소에서 잠시 일한 뒤 85년 삼성전자 미국현지법인에 입사,87년에 이사가 됐다. 대학졸업 이후 13년만에 삼성 임원이 된데 이어 메모리사업의 뛰어난 실적에 힘입어 지난 97년 대표이사에 선임되는 등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삼성전자의 시스템 LSI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임형규 사장과 메모리사업부의 황창규 사장도 진 사장과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삼성에 합류했다. 임 사장은 미국 플로리다대 전자공학 박사,황 사장은 미국 메사추세츠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이다. 표문수 SK텔레콤 사장은 78년 서울대 농대를 졸업한 뒤 곧장 미국으로 건너가 86년 보스턴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94년 SK텔레콤의 기획담당 이사로 입사한 그는 빠르게 진보하는 이동통신 기술 추이를 예측하고 이를 신속하게 경영에 반영하는 능력을 발휘,국내 최대 이동통신회사의 톱에 올랐다.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은 지난 84년 일찌감치 미국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가 됐다. 특이한 점은 행정고시(73년)합격을 통해 경제기획원과 재무부에서 13년간 공무원 생활을 한 뒤 기업에 입사했다는 것. 이 원장은 정통 경제이론에 공직생활의 경험을 가미해 LG경제연구원을 단순 연구 기능뿐만 아니라 기업 대학 공기업 정부부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컨설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연구기관으로 키웠다. "대기업 정책과 시장 원칙"등 경제관련 저서도 여러권 펴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