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官街)에 '대변신 비상'이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주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주요 부처와의 정책토론회를 통해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잇달아 던지면서부터다. 지난 20일 재경부 등 거시경제부처 장관 및 주요 국장들과의 토론회에서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의 부재(不在)를 질타하는 것으로 시작된 노 당선자의 '관료집단 군기잡기'는 날이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당선 이후 거듭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이 (당선자의) 뜻을 이해 못하는 것 같다"는 노 당선자 주변의 얘기까지 전해지면서 관가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 '관료집단 무책임' 질타 노 당선자는 이달 초 인수위 파견 근무자들과 상견례를 하면서 "(공직자) 본인들이 개혁 주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일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정과제 토론회를 시작하면서는 "토론공화국을 만들어 달라"는 당부를 강조했다. 그러나 토론회가 본격 진행되면서 노 당선자의 공직사회에 대한 질책성 발언은 '수위'가 계속 높아졌다. "정책은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가계대출 정책이 급선회하면서 이를 어렵게 만들었다"(20일 경제분야 토론) 21일에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매번 똑같은 과제가 제기되는 것은 공무원들에게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책임성이 결여된 탓 아니냐. 과제로 제기된 것은 그 정부에서 해결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며 공무원들의 무책임성을 지적했다. 22일에는 방용석 노동부 장관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이유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히자 "그런 식이면 뭐하러 장관 하느냐"며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 '사표 쓸 각오로 일하라' 주문 지난 23일 부패방지 토론회에서는 발언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외부의 외과의사를 동원해 수술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공무원들은 자율적 개혁을 해야 한다. 잘라 낼 것은 잘라내고 인원감축이 아닌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창조적 개혁을 해나가야 한다. 스스로 변신하고 이를 감당하지 않으면 고통스런 개혁이 될 수 있다". 24일에는 '사표'를 들먹이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농림부 보고를 듣고 노 당선자는 "농림부 공무원들은 사표를 쓸 각오로 쌀 문제 등 농업대책을 세워달라. 쌀 문제는 86년부터 예측됐던 일인데도 아직껏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데는 공무원들의 책임이 크다. 농민들이 빚더미 위에 앉아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공무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질책했다. 이어 "눈앞에 강물이 닥쳐서 떨어질 위기에 처했어도 더듬기식 해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길이 없으면 만들고 없으면 농림부 공무원 모두 그만둔다는 각오로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 증폭 노 당선자의 이같은 질타는 공직사회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증폭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특히 '토론공화국'을 만들자며 시작한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나타난 관료들의 행태는 당선자를 크게 실망시켰다는게 인수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토론을 하자고 화두를 던지면 공약의 현실성만 문제삼거나 단순히 공약을 되풀이하는 발언이 난무하는 등 '토론할 기본 자세'가 돼 있지 않다는게 당선자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한마디로 공무원들이 당선자가 생각하는 방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판단인 것 같다"고 말했다. 수평적 대화와 자율적 행동, 개방적 문화를 추구하는 노 당선자에게 비쳐진 관료들의 모습은 대부분 수직적이며 타율적 문화의 타성에 젖은 소극적인 주체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노 당선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개혁의 머리와 손발이 돼야 할 관료사회에 대한 개혁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의 다른 관계자는 "당선자가 개혁의 핵심 주체라고 생각하는 사무관과 서기관급을 타깃으로 이런 발언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젊은 생각을 가진 공무원들이 관료적 문화를 앞장서 타파해야 자신과 함께 개혁을 이끌어 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관료들은 어쩔 수 없는 '외과적 수술'의 희생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