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눈 오는 날 .. 조명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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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ms5244@hanmail.net
올해 부산에는 눈이 두 번이나 왔다.
기상청에서야 아주 조금 내린 눈도 눈이라고 기록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두 번이다.
진눈깨비가 아니라 송이송이 쏟아지는 눈(雪)을 눈(目)으로 봐야 눈이 왔다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는 "또 눈!" 하면서 한숨을 내쉴지 모르지만 부산에서는 눈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아예 눈 구경도 못하고 지나가는 해가 더러 있기도 했던 것이고 보면 올해 벌써 두 번의 눈을 보았다는 것은 행운 중에서도 행운에 속한다.
두번째 눈이 내린 것은 마침 대목장을 보아 와서 정리하던 날이었다.
주방창을 열어놓고 생선을 손질하다 무심코 고개를 들었더니 창밖에 하얀 눈송이가 떨어지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2층 베란다에 서서 동네를 내다보았다.
골목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소리,기쁨에 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명절 지낼 걱정으로 무거워지곤 하던 내 마음을 눈이 덮고 있었다.
맏며느리 20년 무사히 넘겼으면 어지간히 이력도 붙고 요령도 생겼으련만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허둥거리던 그 마음이었다.
음식은 뭘 하고,장은 언제 보고 하는 일들은 시어른의 기분에 따라 마지막 날까지 변동이 많았고,변동사항에 따라 왔다갔다 하다 보면 미음자만 봐도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명절 지내는 데 소용되는 시간과 두뇌운동을 나자신에게 투자하면 얼마만큼의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책은 몇 권 정도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계산을 나는 참 많이도 해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대목장은 시어른께서 거진 다 보셨다.
공부하랴 글 쓰랴 바쁘겠다는 말씀은 아주 가끔 주시지만,조금씩 조금씩 일을 거둬주셨다.
그런데도 아직 억울한 마음이 다 가시지 않은 내가 좁은 주방창 밖으로 눈 내리는 바깥을 힐끔거리면서 어서 생선 손질을 마치고 컴퓨터를 켜야지 생각하고 있을 때,시어른의 전화가 왔다.
"얘야,눈 온다.내다 봐라."
딱 한 마디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주방으로 돌아와 다시 고무장갑을 끼면서 나는 밖을 내다보았다.
들떠 있는 시어른의 목소리가 쟁반 두드리는 소리처럼 쟁쟁 가슴 속에서 들려왔고 나는 부지런 부지런 손을 놀렸다.
그리고 손질한 생선 위에 눈처럼 하얀 소금을 고루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