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이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독일과 프랑스를 `늙은 유럽'이라고 비난한데 대해 양국이 국경과 정파를 초월해 분노하고 있다. 일부에선 미국이 `신식민주의적 사고'를 드러냈다고 반발했고 이 사건이 오히려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는 양국 및 유럽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24일 독일 언론이 분석했다.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은 23일 베를린에서 열린 엘리제 조약 40주년기념 양국 외교위원회 공동 회의에서 "우리는 미래를 향한 유럽"이라면서 서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도 이 회의에서 "실제로 유럽의 역사와 국가 건설은 미국보다 더 오래됐다"며 외교 책임자답게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폴커 뤼헤 독일 하원 외무위원장은 이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미국 국방장관은 외교관이 아니며 그의 발언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한 뒤 지금은 새 유럽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프랑소아 코페 프랑스 정부 대변인은 럼즈펠드 장관에게 "이라크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한 유럽의 지혜"를 가지라고 충고했다. 특히 프란시스 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프랑스 언론 회견을 통해 "매우 기분이 상했다"고 밝혔다. 메르 장관은 "나는 이 늙은 유럽이 뒤꿈치를 박차고 있으며,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점을 모두에게 일깨우고 싶다"면서 "세월이 지나면 이것이 입증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 집권당 뿐아니라 야당도 미국 성토에 나섰다. 프랑스 야당인 사회당의 마르탱 오브리 의원은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에 대해 "갈수록 규칙도 없이 세계를 혼자서 통치하려는 미국의 오만"이라고 비난했다. 알랭 쥬페 프랑스 인민자유당(UMP) 당수는 "나는 늙은 유럽에 속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이곳은 미국의 뿌리가 있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 동안 슈뢰더 총리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해온 안겔라 메르헬 독일 기민당 당수 겸 원내총무 조차 "(럼즈펠드 발언이) 옳지 않으며, 우리는 늙은 유럽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메르헬 당수는 또 "폴란드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하나가 된 유럽은많은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훨씬 더 크다"고 강조했다. 기사당 출신의 베른트 포셀트 유럽의회 의원은 럼즈펠드 장관 발언이 `신식민주의'라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은 유럽연합의 상대방이지 보호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은 유럽을 `착한 아이'와 `나쁜아이'로 분열시키려 하는 것이라면서 "그러나 양국 국민의 반발로 그의 발언은 미국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슈피겔은 그 동안 독일 홀로 이라크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밝혀왔으나 "이젠 프랑스에서도 미국의 억압으로 `위대한 국가'가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격렬한 반응이 일고 있다"며 `늙은 미국의 대표' 럼즈펠드가 `유럽'을 이라크전과 관련한 짐에서 해방시켜줬다고 주장했다. 슈피겔은 또 "럼즈펠드 장관은 미국의 이라크 전쟁 계획에 대해 그 동안 유럽이 용기가 없어 갖지 못했던 공동 입장을 찾도록 해줬다"면서 "유럽에서 미국의 가장 신임을 받는 동맹자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이제 어떻게 반응할 지 흥미롭다"고밝혔다. (베를린=연합뉴스) 최병국 특파원 choib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