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성석제(成碩濟)씨가 원고지 10장 안팎 분량의 장편(掌篇) 32편을 묶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문학동네 刊)을 냈다.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중에 몇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한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불법사냥꾼, 시골동네 이장들, 라면 한그릇에 감동하는 어린 군인, 자기 일은 뒷전인 채 남일에 훈수두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 '어버이 은혜' 밖에 부를 줄 모르는 더없이 진지한 음치, 정많은 조폭…. 각 작품은 세상의 조연으로 밀려나 있는 인생들에 대한 애정어린 조명이다. 특유의 해학과 너스레, 냉소가 여전히 빛을 발한다. "그의 웃음폭탄 세례를 받을 때마다 나와 너, 이웃과 세상이 전해 새롭게 보인다"(시인 이문재)는 지적은 이번 모음에서도 유효하다. "나는 왜 언제나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것을 혼자서 궁금해 하면서 우두망찰하는가"라는 작가의 자문은 "나는 왜 소설을 쓰는가"와 동어(同語)로 보인다. 소설쓰기에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31쪽.8천800원. (서울=연합뉴스) 신지홍 기자 shi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