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남쪽 근교 팔래조에 위치한 프랑스 최고 명문 종합공대 에콜 폴리테크니크. 이블린 숲에 에워싸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들어서면 대학 캠퍼스라기보다는 대규모 산업 연구단지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학교 건물도 일반 대학건축물과는 달리 실용적인 소규모 연구동으로 돼 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프랑스 최대 산학협력 모델로 기업 전략 연구소의 집합체다. 산합협력 규모와 연구실적도 프랑스 최고 수준이다. 산학협력은 설립 이래 2백9년간 이어져온 전통이다. '국가와 과학, 영광을 위해서(Pour la patrie, les sciences et la gloire)'라는 교훈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학교 설립과 동시에 산학협력 개념이 도입됐다. 이로 인해 에콜 폴리테크니크와 프랑스 재계는 파트너십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프랑스 증시 지수인 CAC40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에콜 폴리테크니크 졸업생이다. 벨나르아르노 LVMH그룹 회장, 미셀 봉 프랑스 텔레콤 전 회장, 장 마리 메시에 전 비벤디유니버설 회장 등이 학교를 나왔다. 이들 재계 지도자는 동창회 상임 자문조직 등을 통해 산업계의 문제점과 신기술 개발의 방향을 제시하고 재정적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또 다른 전통은 산학협력을 통해 학생들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산업, 과학 기술뿐만 아니라 조직의 리더십까지도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역 장교로 홍보실장을 맡고 있는 올리비에 드 라브레테슈 대령은 "에콜 폴리테크니크는 과학 천재들에게 전략학 개념을 가르치고 있다"며 "프랑스 산업계를 이끌 미래의 경제 리더를 배출하는 엘리트 양성기관"이라고 설명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경쟁력은 독특한 산학연체제에서 나온다. 캠퍼스에는 강의실보다 교수 연구실이 더 많다. 교수 연구실은 20여개의 종합 연구소에 소속돼 있지만 독립 기업처럼 운영된다. 기업들도 교수실을 단순한 대학의 연구실이 아니라 파트너 업체로 여긴다. 교수는 산업계로부터 직접 연구 프로젝트를 따와 연구실을 마치 기업처럼 운영한다. 프로젝트 한 건당 수주액이 1백만 유로가 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대기업의 전략적 R&D(연구개발) 프로젝트의 경우 수백만 유로에 이른다. 일반 R&D 전문 연구소의 프로젝트보다도 더 규모가 큰 것을 수주하기도 한다. 교수 연구실은 총 지도 교수 아래 전임 교수 2~3명이 있으며 10여명의 학생이 소속돼 각자의 분야를 연구한다. 학생들 자신도 단순히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수동적 학생이라기보다는 직접 연구 개발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R&D 센터 연구원이라고 여긴다. 또 교수실에는 연구 실험 장비와 설비만 책임 관리하는 전담 기술자(technician)들이 따로 있다. 고용주는 에콜 폴리테크니크이지만 보통 20년 이상 한 교수 연구실 장비를 담당하는 이들은 모든 실험 장비와 재료를 항상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 교수와 학생의 연구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 연구실 기술자들도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들은 한 교수 아래서 동일한 실험 장비만 오랫동안 담당하면서 최고의 전문가가 된다. 교수들도 최신 첨단 장비 구입에 앞서 이들의 의견을 참고로 한다. 따라서 한국의 일부 대학에서처럼 비싼 장비를 구입해놓고도 사용법을 모르거나, 유지관리를 잘못해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교수와 학생이 실험 장비를 관리하느라 연구시간을 빼앗기는 일도 없다. 관련 분야 교수간의 긴밀한 협력과 개방성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의 하나로 꼽힌다. 교수들은 서로간 도움을 받아가면서 미래형 컨셉트에 전문 기술이 응용된 연구 결과를 내놓는다. 폴리테크니크 캠퍼스 내에서만 학문간(interdisciplinary) 제휴와 협력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에콜 폴리테크니크 교수는 다른 대학 전문가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한다. 다른 대학의 전문 교수와는 물론 소속 연구실의 학생을 다른 교수에게 일정기간 동안 보내 공부해 오도록 한다.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새로운 화두는 국제화다. 글로벌화에 맞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국 MIT 등 외국 명문공대들과 제휴 협력을 본격화하고 있다. 파리=강혜구 특파원 bellissima@hankyung.com [ 협찬 :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