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지속되어 온 저금리정책기조가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경제를 옥죄고 있다. 가구당 평균 3천만원에 이르는 가계대출은 금융권 부실화 문제를 초래,급기야 '가계대출 조기경보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인 M3(총유동성)는 작년 말 1천1백60조원에 이르고 있으며,시중 단기 부동자금은 3백70조원을 넘어섰다. 돈은 투신사가 발행하는 초단기상품인 MMF로,한국은행이 통화조절용으로 발행하는 통안증권으로 몰리고 있다. 단기성 부동자금은 금융권 수신의 40%가 넘는 규모인데,수년째 계속된 저금리로 조성된 과잉유동성이 가장 큰 요인을 제공했다. 저금리는 과잉유동성 뿐만 아니라 자금흐름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금융회사는 개인부문에서 자금을 조달해 기업에 중개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한은이 발표한 자금흐름 동향을 보면 작년 2분기 이후 금융회사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부문에도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개인이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마찬가지로 빌려가는 주체가 됐다. 3분기에는 개인의 자금부족분이 2분기에 비해 3조8천억원 증가했다. 자금흐름의 왜곡이 심화된 것이다. 물론 개인의 자금부족은 부동산 구입과 소비지출에서 비롯됐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경제가 당면한 과제로 △가계부채로 인한 금융부실 △급팽창하는 파생금융상품이 갖는 위험을 들고 있다. 얼핏 보기엔 아무 관계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은 둘 다 '저금리'라는 배경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신·증권사들은 금융자율화로 가능해진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투자를 확대,고객을 유치했다. 이에 따라 주가지수선물 국채선물 옵션 등 파생금융상품시장이 단기간에 급팽창하고 있다. 투기성이 높은 것은 파생금융상품의 일반적 속성이지만,높은 차입전략을 동반하는 옵션이 세계 1위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은,쉽게 그리고 저렴한 비용으로 판돈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해진 넘치는 돈에 기초하고 있다. 파생금융상품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나,심각한 잠재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우선 외환자유화 조치로 외환거래는 증가했다. 그러나 선물환 외환스와프 등 외환관련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한국과 경제규모가 유사한 나라와 비교할 때 여전히 미진하다. 그 이유는 단기 자금시장이 여전히 낙후되어 원화·외화자산간 차익거래활동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상 파생금융상품은 주식 국채 등 특정 증권을 대상으로 급팽창하고 있는데,위험관리 또는 자금배분의 효율성보다 투기적 성격이 강해 또다른 금융불안의 요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불황에 대응해 저금리정책을 견지해 온 미국 영국 호주 등 이른바 앵글로 아메리카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고 있다. 이들 나라도 상대적인 차이는 있으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소비 침체를 겪고 있다. 혹자는 현재 진행되는 소비위축은 부동산 붐이 꺼지며 침체기에 들어선 것을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내수부진은 부동산 침체 때문이 아니라 부동산가격이 더 이상 크게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실망감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빚 얻어 주택을 구입한 사람이 주택가격은 별로 오르지 않고 이자만 부담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잘 이해될 것이다. 한국경제는 여전히 과잉유동성으로 조성된 호황기에 있다. 정부는 저금리로 조성된 과잉유동성 문제에 대응해서 금융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조치에 정책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나타나고 있는 경제불안 징후가 특정부문에 한정되지 않고 경제일반으로 확산되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금융감독을 강화하고 또 일선 금융회사 경영에 대한 실시간 정보의 접근성을 높이는 조치가 요청된다. 내수가 부진하다고 해서 다시 금리를 인하하는 총수요관리정책은 자칫 과잉유동성 문제를 더 키울 뿐이다. kimks00@hananet.net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