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까지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93년의 탈퇴선언 때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따라서 93년의 사태를 통해 향후 북핵 파문이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지 점쳐볼 수 있다. 93년 북핵 위기는 미신고 영변 핵시설에 대한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사찰 요구에서 비롯됐다. 북한은 '체제압살'이라며 NPT탈퇴 선언 등 벼랑끝 전술로 맞섰고 미국은 전쟁 계획을 실행단계까지 끌어올리면서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북측은 지난해말 핵 파문이 불거진 이후 핵시설에 대한 감시 카메라 및 봉인 제거,사찰관 추방, NPT 탈퇴 선언 등 93년과 같은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북측이 그때나 지금이나 '전력생산'을 핵시설 가동의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론 핵 개발 카드로 미국과의 거래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하다. 93년 3월 북한의 NPT탈퇴 선언 이후의 과정을 보면 5월 북핵 문제는 유엔 안보리에 보고됐고 6월엔 북.미간 합의가 이뤄져 탈퇴 유보를 선언했다. 그러나 북한은 94년 6월 국제사회의 의무이행 압력에 반발, IAEA 탈퇴를 선언했고 10월 제네바 합의로 북핵 문제는 봉합됐다. 하지만 93년 미국 대통령은 대북 유화적인 자세를 갖고 있었던 빌 클린턴이었지만 지금은 대북 강경론자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어서 북핵 문제가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지는 미지수이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