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딩 게이트'에서 지구를 떠나기 위해 제작된 거대 우주선에 탑승한다. 문이 열리면 우주선은 새로운 은하로 연결되는 우주정거장 ‘코스모스테이션’로 이동한다. 때마침 이 곳에선 웜홀(다른 시공간을 잇는 우주구멍)이 발견됐다. 시공간이 뒤틀리고 이내 별들이 쏟아지는데 순식간에 거센 파도가 우주선을 덮친다. 양옆으로 용암이 들끓고 바닷물이 천장까지 치솟는데, 물결 사이로는 작은 모랫길이 뻗어 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깊은 바닷 속으로 빠져든다. 눈으로만 봤는데 몸이 비틀거릴 정도로 생생한 풍경이 펼쳐진다. 곳곳에 '어지러울 수 있습니다'란 문구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인천 영종도에 가면 이처럼 ‘인터스텔라’ 같은 SF 영화 속에서 실제 우주선을 탄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지난 1일 문을 연 영종도 모히건 인스파이어 엔터테인먼트 리조트 안 ‘르 스페이스’에서다. 웜홀 지나 펼쳐진 우주 공간르 스페이스는 현대퓨처넷이 인스파이어 리조트에 처음 문을 연 실감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이다. 전시 주제는 ‘미지 세계로의 여행’. 18개 전시 공간을 따라 이동하면 새로운 차원의 우주를 여행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우주와 숲, 심해(深海), 꽃이 피어나는 사막, 새로운 행성 등을 모티브로 각 공간마다 화려한 디지털 아트가 천장과 벽면, 바닥을 수놓는다.오태윤 현대퓨처넷 전시사업팀장은 "르 스페이스는 상하와 전후좌우 6개 면을 모두 활용해 빔프로젝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기둥을 없애고 층고를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인스파이어 건립 단계부터 논의를 진행했다"며 "공간을 확보하고 전시관을 구축하기까지 2년가
"언니, 나랑 놀자."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에서 주인공 임솔(김혜윤 분)의 할머니 정말자(성병숙 분)는 치매 환자로 극의 핵심 '키맨'이자 '눈물버튼'이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한 '선재 업고 튀어'에서 임솔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시계에 묘한 집착을 보이고, 임솔이 과거를 바꾸자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한다.하지만 동시에 정말자는 치매로 손녀를 알아보지 못해 "언니"라고 부르고, '시크릿 쥬쥬'를 제일 좋아하는 어린 아이가 돼 버려 안타까움을 자아낸다.15년 전 정말자는 손자와 손녀를 끔찍이 아끼는 할머니였다. 임솔이 과거로 돌아와 정신이 온전한 정말자를 보며 눈물을 보였던 것도 이 같은 이유다. 임솔은 과거로 와서 좋은 이유 중 하나가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지 않은 것이라고 꼽기도 한다.치매는 퇴행성 뇌 질환으로 꼽힌다. '치매'의 병명은 라틴어 '정신이 없어진다'는 의미의 단어에서 유래됐는데, 정상적인 생활을 해 오던 사람도 다양한 원인으로 뇌 기능이 손상돼 기억력, 언어능력, 시공간 파악 능력과 판단력, 사고력 등 다양한 지적 능력이 저하되는 증상을 반영했다.치매의 원인은 뇌 기능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질환이다. 노화는 대표적인 원인이라 과거엔 치매가 '노화 현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많은 연구를 통해 다양한 원인이 있는 뇌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흔히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는 원인 미상 신경성 퇴행성 질환으로 전체 치매의 50~60%를 차지하고, 뇌의 혈액순환 장애에 의한 혈관성 치매가 20~30%를 차지한다.이 외에 뇌
“그 남자, 정말 운도 좋아. 실력이 좋긴 해도 이렇게까지 잘 될 줄은 몰랐는데….”사람들은 부러운 눈으로 그 ‘행운아’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던 그 남자가, 우연히 세계 최고 여배우의 눈에 든 후 한순간에 떼돈을 벌게 됐거든요. 그 후로도 남자의 행운은 이어졌습니다. 여배우 덕분에 유명해진 남자에게 광고 제의가 쏟아졌고, 이는 더욱 큰돈과 명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전 유럽에서 스타가 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으니 그야말로 ‘인생 역전’이었습니다.남자도 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난 정말 운을 타고난 사람이야.” 그의 이름은 알폰스 무하(1860~1939). 하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그 행운 뒤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파헤쳐 봅니다. 무명 화가의 행운무하의 시작은 초라했습니다. 1860년 모라비아(지금의 체코)에서 태어난 무하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지만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열여덟 살이던 1878년, 프라하 미술 아카데미에 지원했을 때 면접관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봐, 젊은 친구. 세상에 화가는 많아. 자네가 더 잘 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찾게나.” 하지만 무하는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화가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이력서를 돌린 끝에 간신히 연극무대의 미술을 담당하는 회사에 취업하게 됐지만, 곧 구조조정에 휘말려 해고당하고 말았습니다.실업자가 된 무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기차역에 갔습니다. 그리고 창구에 주머니에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