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을 편안케 하려면..文輝昌 <서울대 교수.국제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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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은 우리 역사상 가장 활기찬 해였다.
우선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는 안돼'라는 엽전 사상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쪽으로 우리의 사고를 혁명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월드컵 효과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고,그 원동력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월드컵 효과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우리가 철저하게 원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 선수들에게 얄팍한 기술이나 전략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철저한 체력훈련을 통한 원칙 축구를 전수했다.
붉은 악마들 또한 그 규모에 상관없이 가장 원칙적인 응원을 했다는 사실에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월드컵 성공의 비결은 '신바람'이 아니라 '원칙준수'다.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측의 핵심역량 역시 원칙준수다.
깨끗한 돈관리,자발적 후원회,새로운 정책제시 등이 모두 공명선거,선진선거의 기본이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이 지속적인 이벤트성 행사,그리고 젊은층인 네티즌의 신중하지 못한 몰표에 의해서 가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매우 잘못된 것이다.
이회창 후보는 선거에는 졌지만 패배를 자인하고 정계를 은퇴하는 진솔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됐다.
패자의 원칙을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사실 승자는 멋있어 보이고,패자는 어색하고 추하게 보이게 마련이다.
특히 상대방의 승리를 선거부정 등으로 몰아붙이려 할 때 더욱 추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는 이 모든 것을 접고 패자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우리를 감동시켰다.
승자건 패자건 원칙을 지키면 모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는 전략을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하나는 정(正)이고,다른 하나는 기(奇)다.
정이란 정석 또는 정공법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상적인 전략이다.
정의 전략을 쓰면 모든 것이 도리에 맞고,무슨 일이 일어날지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이다.
기는 묘수 또는 변칙기술로 표현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전략이다.
경우에 따라 효과가 크기도 하지만,잘못되면 판 전체를 망칠 수 있어 매우 불안정하다.
정치의 정(政)에는 '바를 正자'가 포함돼 있다.
정치인들은 묘수 찾기에 급급하기 보다는 판을 크게 보는 정의 전략을 실행해야 할 것이다.
정의 전략으로 승리한 노무현 당선자측이 정권을 잡은 후 기의 전략으로 흐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대기업 구조조정본부 해체,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와 관련된 주장들은 정보다는 기에 가깝다.
국민은 변화를 원했기에 노무현 후보를 택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변화를 주도하되 불안하지 않게 해야 한다.
특히 반(反)기업적 성격의 정책은 절대 금물이다.
기업인들을 불안하지 않게 하려면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하는가? 자율성과 공평성이다.
구조조정본부 해체 운운하는 것은 기업자율성에 위배되고,조세포괄주의나 분배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공평성에 위배된다.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한다고 재벌문제가 해결될 수 있단 말인가? 정부는 기업들로 하여금 정부 눈치를 보게 만들 것이 아니라 시장의 준엄한 심판을 두렵게 만들어야 한다.
구조조정본부가 있건 없건 재벌이 이상한 행동을 취하면 상품시장이나 주식시장에서 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
정부는 경제체제의 큰 틀을 짜야지,굉장한 묘수나 발견한 듯 기(奇)의 정책을 쓰면 안된다.
국가의 경제발전단계에서 개발도상일때는 상품시장,요소시장이 모두 불완전해 정의 전략보다는 기의 전략이 더 효율적일 경우가 있다.
한정된 자원과 불완전한 시장상황 하에서 정부는 특별한 경제성장계획을 내세울 수도 있고,기업 또한 정상적인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전략으로 성공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진경제체제에서는 원칙이 변칙을 압도하는 정의 전략이 우선한다.
노무현 당선자는 "원칙에 맞게 정치를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러한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대한다.
금년을 기점으로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국민 모두가 원칙을 따르는 정의 전략을 실행하도록 하자.
cmoo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