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부푼다.그러나 1,2년 지나고 보면 낭만적인 분위기도 사라지고 유권자들은 실망한다. 지도자가 된 대통령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개혁은 미래를 위해 오늘의 아픔을 인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12·19 선거를 통해 선출된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정권 인수와 더불어 선거 때 어떤 공약을 했든,사회 각계각층에 희생을 요구하는 인기 없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난 정권에서 미루어 온 좀 더 심각한 문제들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서 국민 각자가 새로운 사회 계약을 합의하는 일이다. 군사 독재정권 이후 두번에 걸친 민간정부에서 과거 세대인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 바 '3김 시대'가 지나고,젊고 서민적인 대통령을 젊은 세대가 주도적으로 선출하는 데까지 우리의 민주주의는 획기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도자와 국민 각자의 인식이 서로 다르다. 특히 지난 5년 국민의 정부에서는 남북한 관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북한 정권의 정체성에 대해 우리 정부의 불분명한 태도 때문에 우리의 자유 민주주의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젊고 기성세대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노 당선자는 1960년대 초 미국에 새 바람을 일으키며 당선된 존 F 케네디 대통령처럼 국민들에게 '정부가 무엇을 해줄 것을 기대하지 말고,국민들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는 국민들에게 마치 대가 없이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선심정책을 시행해 온 결과 국민들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되지 않았는가? 지난 97년 아시아의 금융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한 결과 실업률은 낮아지고,내수 증가로 비교적 고도 성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대가로 투자는 감소하고,국가 경쟁력은 저하되고,정상적인 금융을 위해 투입된 1백50조원이 넘는 막대한 공적자금은 다음 세대의 빚으로 남게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을 선출해 경제 성장의 혜택을 받았던 국민들과 그 대가를 부담해야 하는 노 당선자를 선출한 국민들간에 국민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과거 청산은 책임 소재를 밝히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실효가 있다. 지식 정보사회로 이전하는 개방된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힘을 합해 미래 사회를 만들어 가는 노력에 집중해야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나갈 수 있다. 우리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우리 전체의 문제가 중요하다. 지역간 파벌간의 전략적 제휴로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힘을 합하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한 것이다. 이번 선거가 여당과 야당의 양당간 대결이 아니라,3김 시대로 지칭되는 과거 세대가 지나고 젊은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기 위한 젊은 지도자를 선택한 것이라면,기본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나라를 새로운 방법으로 만드는 데 모두가 힘을 합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정보통신으로 하나가 되어가는 세계에 우리 모두의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통해,미군 작전 중 발생한 불행한 여중생의 사고에 대한 국민적 의사표시를 통해,여수 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를 통해,세계로 팔려 나가는 우리 이동전화기 성공을 통해,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하는 동포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개방된 세계에서, 투명한 기업 관행 속에서 우리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으면 투자 유치 활동이 없어도 외국 기업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또 우리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면 세계 시민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이민 오려 할 것이다. 노무현 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선진국을 배워 선진국 대열에 끼려 하는 것이 아니라,기본에서 시작해 정정당당하게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선진국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보편 타당성 있는 기준으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soonhoo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