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스피드가 키워드인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테크노 파워(Techno Power)'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기술에다 경영능력까지 갖춘 기술경영으로 글로벌 경쟁시대를 앞장서 이끌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영에서는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중국이 21세기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데도 그 바탕에는 테크노크라트들의 리더십이 뒷받침되고 있다. 국가경영뿐만이 아니다. 기업경영에서도 이공계 출신 테크노 CEO(최고경영자)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정보통신.전자.인터넷.생명공학 등 미래형 산업의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이 분야의 엘리트들이 새로운 파워군단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침체, 신뢰상실에 따른 기업가치 하락 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혁신(Innovation) 가치로 무장한 테크노 CEO들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기업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혁신의 원동력이라 할수 있는 기술도 이제는 R&D(연구개발)를 뛰어넘어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로 확대되고 있다. 기술과 시장을 접목시켜 고객 가치혁신을 주도하는 이른바 '4세대 R&D'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어도 이를 시장과 연결시키지 못한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 벤처기업에서기술력과 경영능력을 두루 갖춘 젊은 테크노 CEO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벤처기업뿐 아니라 덩치 큰 대기업에서도 유연한 사고와 신지식으로 무장해 변화 적응력이 빠른 테크노 CEO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 시스코시스템즈의 존 챔버스 회장, IBM의 루 거스너 회장, 야후의 제리 양 사장, 인텔의 크레이그 배럿 사장, BMW의 헬무트 판케 회장, 닛산의 카를로스 곤 사장 등 테크노 CEO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들은 모두 기술에 대한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테크노 경영을 펼쳐 나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어냈다. 중국인 출신으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을 일군 컴퓨터어소시에이츠(CA)의 찰스 왕 전 회장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최적의 기술이 필수이며, 전략적인 사업관점과 기술을 하나로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을 평생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기술경영의 중요성을 일깨운 말이다. 또 기술과 시장에 밝은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 회장은 기술과 규제가 급변하는 통신사업의 동향을 미리 예측, 목재회사였던 노키아를 첨단 정보통신 기업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취임 4년만에 10배의 순익을 올렸다. 미국 IRI(Industrial Research Institute)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기업의 45%, 유럽 기업의 49%가 테크노 CEO 체제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테크노 CEO의 존재 여부가 곧 기업의 경쟁력을 나타내 주고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는 기업들을 보면 하나같이 테크노 CEO를 중용하고 있다. 최근 삼성 LG SK 등 주요 그룹의 인사에서 이는 단적으로 나타난다. 각 기업마다 엔지니어 출신의 테크노 CEO가 전면으로 부상한 가운데 이공계를 나온 젊은 전문가들이 핵심 포스트에 발탁돼 주요 임원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조사결과 이미 국내 1백대 기업 CEO중 36%, 코스닥 등록기업 CEO중 50%가 테크노 CEO로 채워져 있다. 손욱 삼성종합기술원장은 "기술과 연구개발 능력이 기업은 물론 국가의 운명과 가치를 좌우하는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며 "한국이 21세기 세계 주도국으로 나서기 위해서는 경영과 기술을 이해하는 테크노 CEO 1만인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