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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호주에는 대나무가 많다.

한국에서 보는 왕대는 아니고 솜대가 많다.

호주에선 대나무는 땅을 황폐화시키고 아무것도 못 자라게 하는 이롭지 못한 나무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보니 대나무가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사군자(매난국죽)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항상 곧고 푸른 절개를 자랑한다.

일생에 단 한 번 피는 흰꽃이 지면 딱딱한 껍질의 씨앗이 땅에 떨어진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 3년이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이때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 대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간다.

5년째가 되는 해 대나무는 딱딱한 땅을 뚫고 죽순을 내밀기 시작한다.

일단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대나무는 하루에 65㎝씩 자란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자랄 수 있을까?

식물은 자신의 가지만큼 뿌리를 뻗어나가는데 그렇다면 대나무의 뿌리가 딱딱한 땅을 뚫고 하루에 65㎝씩 뻗어나간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땅에 떨어진 대나무 씨앗은 뿌리를 먼저 만든다.

땅 속의 모든 영양분과 수분을 빨아 올릴 수 있도록 촘촘하게 뿌리를 뻗어나간다.

그러니 대나무 밭에는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줄기와 잎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뿌리를 튼튼히 해 놓는 준비성 덕분에 대나무는 가뭄이 심하고 맹렬한 추위가 닥쳐도 죽지 않는다.

얼어죽은 줄기가 생겨도 봄이면 힘차게 죽순을 내민다.

대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준비성이다.

대나무가 세상 밖으로 싹을 내밀기 전 뿌리를 튼튼히 하듯 우리도 한 해의 비전을 세우고 그 비전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준비돼 있는 사람이나 기업에는 환경 변화가 두렵지 않다.

한 해의 비전을 세우고 실천을 다짐하는 새해 벽두에 대나무가 주는 교훈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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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1~2월 집필은 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월),이기형 인터파크 사장(화),마크 클라크 한국코카.콜라보틀링 사장(수),최영환 과학문화재단 이사장(목),이엽 남서울병원장.일반외과전문의(금),소설가 조명숙씨(토)가 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