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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침에] 우리민족의 아젠다 .. 崔東鎬 <시인.고려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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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추위가 몰려올수록 하늘은 맑고 투명하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고 하면서도 겨울맛을 코에 찡하게 느끼게 되면 누구나 움츠러들게 마련이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세월의 뒷덜미를 보고 있는 요즘 차가운 겨울저녁은 더 붉게 물드는 것 같다. 세월의 빠름과 사회적 혼돈 속에서도 망연히 금년 한해를 돌이켜보니 다음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금년 6월 월드컵에서 한국이 세계 4강의 대열에 올랐다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필자가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랐다는 것이다. 월드컵 게임이 계속되는 한달여 동안 한국인들은 누구나 감격했고 또 행복했다. 단군 할아버지가 신시(神市)를 열었던 날 이렇게 축제적 기쁨이 넘쳐나지 않았을까. 붉은 악마들의 열정은 세계를 누볐고,누구나 대한민국을 외칠 때마다 폭발적인 에너지와 힘을 느꼈다. 한민족 내부에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가 숨겨져 있었던가 하고 우리 스스로 놀란 것은 물론,세계적인 경탄의 눈길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지난 8월 초 필자는 처음 백두산에 올랐다. 옌볜대학 뒷동산에 '항일 무명영웅비'를 제막하고 난 다음이어서 안개의 베일에 싸여있던 백두산 천지는 그 신비한 베일을 벗고 저물녘 햇빛 속에 잠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 새벽 멀리서 개짖는 소리를 적막하게 들으며 필자는 '백두산 천지에서 무명영웅을 추모하다'라는 시를 썼고,우리 일행을 위한 마지막 만찬에서 이 시를 낭송했다. 그 일부를 인용한다. '고구려의 옛땅 북만의 대륙을 가로질러 / 천지에 이르고 보니 / 누가 한반도를 좁다고 하랴 / 누가 한반도를 질곡의 땅이라 하랴 / 바다를 향해 치달리던 열정과 / 대륙의 웅혼한 기백이 / 백두산 천지에서 하나 되어 신령한 힘을 얻나니 // 천지는 배달민족의 역사적 사명이 / 태고로부터 서려 있는 곳,천지에서 내려와 / 장백폭포의 물안개 속에서 산정을 우러러보니 / 만고의 풍상에 응축된 / 배달민족의 힘이 하늘로 솟구치는구나' 한반도,그리고 남쪽 한 귀퉁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대륙에서 그리고 백두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주 다르다는 것이 강렬히 느껴졌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시를 쓰게 됐고,함께 등반한 1백여분들 또한 필자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연말에 다다라 보니 모두가 코앞에 닥친 대선정국에만 골몰하는 것 같다. 마치 대한민국의 운명이 대선 하나에 의해 모두 결정되고 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거의 무정부적 자기방기에 가까운 이런 상황에서 역사와 미래를 깊고 넓게 바라보자는 것이 필자의 제안이다. 마침 12월 초부터 코엑스 2층 특별전시장에 '평양,고구려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백두산 천지에 올랐던 남다른 감회가 있는 까닭에 시간을 내어 가보았다.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고분과 벽화들에서 보았던 역동성과 강렬함이다. 고구려인들은 태양 속에서 세발 달린 까마귀(三足烏)가 살고,달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그들 나름의 별자리를 관측한 기록도 남기고 있다. 고구려가 드넓은 만주대륙을 버리고 왜 한반도로 남하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역사학적 해석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필자의 특별한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고구려인들의 세계관이다. 이미 1천5백년 전에 그들은 그들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변방이나 주변이 아니라,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발상은 세계화 시대의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될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세계의 중심에 있었고,고구려 시대에도 우리 민족은 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아이디어가 20세기적 질곡을 깨고,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결정적 열쇠가 되지 않을까. 세계화 시대의,그리고 통일시대의 한국을 이끌어나가는 결정적 지표는 지역감정을 부추기고,개발이익을 내세워 대선정국을 공략하겠다는 근시안적 사고나 국민을 현혹하는 구호가 아니다. 민족의 미래를 조망하고,민족사의 염원을 성취하는 자리에 설 때 온갖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 이념이 우러나오는 것이라 믿는다. cdh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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