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개발연대에 주역을 한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불가에서 회자개리(會者皆離)라 했던가? 조 회장이 운수업으로 성공의 기틀을 잡은 것은 월남전쟁 때 월남에서 하역과 수송 업무를 맡은 때가 아닌가 한다. 그 일은 조 회장 개인의 성공 일 뿐 아니라 이 나라 항공산업 및 해운산업 발전의 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한 일이었다. 이런 분야의 진출을 계기로 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한진의 공운과 해운은 사상 최초로 우리 경제가 해외로 뻗어나가는 밑거름의 상징이기도 했다. 조 회장은 화물 적재량 세계 제2위를 자랑하는 대한항공을 키워 온 창업자이다. 조 회장은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용기를 잃지 않았고 묵묵히 할 일을 하며 부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사무실에는 누군가가 써준 반야심경이 걸려 있다. 최근에 정부는 인천 지역을 동북아 물류 및 비즈니스 중심지로 만드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 서울에서 3시간 비행거리에 인구 1백만명 이상의 도시가 43개나 있고 그 중심에 인천공항과 대한항공이 나란히 있다. 필자는 동북아 물류중심지 건설에 관해 조 회장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작년 8월에 만나본 일이 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됐으니 새삼 인생의 무상함을 느낄 뿐이다. 조 회장은 인천이 동북아 물류 중심지가 될 것은 틀림없다고 하고 운송 전문 업체인 한진그룹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함을 느낀다고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조 회장이 키워온 한진은 항공, 해운 육운을 겸비한 운수사업으로 전문화의 길을 걸어온 것은 이 나라 기업의 일반적인 풍토와 다른 점이다. 조 회장은 자기의 사업을 나라의 이익과 결부시키는 데에 남다른 노력을 했다. 예컨대 한.일, 한.불 외교 관계 발전에 민간적 역할을 담당했고 특히 한.불 문화교류에 공헌한 바가 컸다. 조 회장은 별로 말이 없고 표면에 나서는 것을 좋아 하지 않지만 할 일은 하는 스타일이었다. 조 회장은 인천에서 컸고 인천 때문에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조 회장은 인천에 남다른 애착을 가졌다. 인천 시민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사재를 던져 인하대학교를 명문대학으로 재건했고 이 나라 최고의 시설과 의료진을 자랑하는 인하의료원을 건설했다. 이 병원에서 요양을 하다가 82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으니 조 회장은 여한없이 편안하게 갔을 것이다. 이 나라 경제개발 초기에 남긴 그의 공적은 한국 경제사에 길이 빛날 것이고 그가 남긴 발자취는 후대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삼가 조 회장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