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대한민국학술원법 개정안을 처리할 무렵 민주당 김희선 의원이 자리를 떴다. 그런데 전자투표가 실시됐을 때 놀랍게도 이석한 김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나노기술개발촉진법과 민·군겸용기술사업촉진법을 처리할 때도 자리에 없는 김 의원이 찬성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같은 '마술'의 비결은 간단했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같은 당 박상희 의원이 김 의원 대신 투표기 버튼을 눌러준 것이었다. 박 의원은 국회 사무처 직원의 제지를 받고서야 더 이상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고위 당직자인 이상배 정책위 의장마저도 "옆자리의 임인배 의원이 누구를 만나러 간다고 해 대신 투표했다"고 실토했다. '대리투표'를 하는 장면이 여러 기자에게 목격된 박 의원은 "절대 하지 않았다"며 발뺌까지 했다. 김 의원과 임 의원은 자신들이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대리투표가 이뤄졌다며 황당해했다. 민주주의 도입 초기에나 볼 수 있었던 대리투표가 21세기에,그것도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다시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문가와 시민단체에선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서울대 법대 성낙인 교수는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대리투표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를 전자투표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국회는 지난 7,8일 의결정족수 미달 상태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이날 문제 법안에 대해 재의결을 실시했다. 그런데 이번엔 대리투표로 국민과 법을 무시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팀의 이지연 간사는 "전자투표를 도입해서조차도 그런 불상사가 생긴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전자투표제를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나눠먹기' 예산심의에 이익집단을 위한 선심성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온갖 노력을 기울여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고서도 정작 표결이라는 마무리 의정활동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대선에서 마무리 득표활동도 과연 이렇게 할지 의문이 간다. 윤기동 정치부 기자 yoonk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