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미국도 일본처럼 디플레 함정에 빠질까.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과 그의 동료들이 다음주에 열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통화 유동성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하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금리를 1.75%에서 1.25%로 낮춰 통화 유동성을 더욱 풍부하게 하면 기업들의 가격결정권(pricing power)을 강화함으로써 디플레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만족은 디플레의 '친구'다. 디플레에 대한 치료는 통화정책의 기조를 공격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수년간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뒤늦게 금리를 0%대까지 떨어뜨린 뒤 그들이 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사용했다고 강변 해왔다. 그린스펀과 FOMC는 일본은행의 실수에서 배워야 한다. 우선 병을 치료하려면 진단을 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은 FRB가 디플레보다 인플레의 잠재적 위험성을 더 우려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인플레는 우리가 많이 겪은 탓에 이를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인플레의 핵심은 기업가들이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믿는 데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격을 올리는 대로 소비자들이 이를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디플레의 핵심은 기업가들이 가격결정권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다. 기업가들은 가격결정권의 부족을 경험하는 초기 몇 년간은 이같은 상황을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본다. 그들은 경기회복과 함께 가격 결정권도 회복할 수 있다는 오류에 빠져 있다. 이같은 상황이 정확히 미국 경제의 요즘 모습이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디플레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핀스펀과 그의 동료들은 최근 생활비가 1∼2%(소비자가격지수(CPI) 기준) 오른 점을 인플레의 증거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디플레 기간 중에도 생활비는 오른다. 전체 CPI에만 초점을 맞추게 되면 9월 완제품 가격이 지난해 9월보다 1.9% 떨어졌고 2분기 내구재 가격도 4분기 전에 비해 2.8% 하락했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다. 더욱이 FRB는 서비스가격 상승이 제품 가격 하락을 상쇄한다고 믿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가격결정권은 통화 정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30년전만 해도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믿은 기업의 경영자들은 잦은 가격인상과 M&A를 통해 매출을 키우는 데 온힘을 쏟았다. 비용절감과 같은 경제의 효율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폴 볼커 FRB의장은 긴축적인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에 대처했다. 그린스펀 의장도 지난 14년간 일관되게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펴왔다.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기업의 가격 결정권을 제한하면서 기업들은 비용절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지난 10여년간 정보기술(IT)과 다른 자본재를 활용해 비용을 절감하는 게 유행처럼 확산됐다. 요즘 들어서는 비용절감을 위해 인력 뿐 아니라 자본재 투자도 줄이기 시작했다. 특정회사가 자본재 주문을 줄이면 그 회사는 비용절감이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회사가 자본재 주문을 줄이면 경제 전체의 수요가 줄어드는 파괴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현재의 디플레 단계는 가볍고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FRB가 실기를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FRB가 금리인하를 통해 추가적인 통화 유동성을 제공,경제를 자극하면 기업들의 가격결정권을 강화할 수 있다. 기업들이 이 때문에 비용절감 노력을 게을리할 것이라는 우려는 사소한 것이다. 지금이 행동에 나설 때다. 정리=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 -------------------------------------------------------------- ◇이 글은 웨인 앤젤 전 FRB 이사가 29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Greenspan's Deflation'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