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 제의는 지난 17일 핵 개발 프로그램 추진 사실을 시인한 이후 첫 반응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의 이같은 제의 배경에는 단기적으론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을 우선적으로 보장 받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선제공격에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으로선 체제 보장이 급선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통해 우리(북)에 대한 핵 불사용을 포함한 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약한다면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대목에서 이같은 뜻을 읽을 수 있다. '핵 불사용'언급은 미국이 북한을 비롯한 7개국에 대해 핵 공격가능성을 상정한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를 작성하는 등 '선제공격'의지를 현실화하고 있다는 북측의 절박한 정세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 거래를 통해 군사공격을 배제한 불가침조약을 맺어 체제보장을 받아내는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체제를 공인받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북한의 이같은 제의는 장기적으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이끌어 내기 위한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통일연구원의 전현준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제의한 북·미 불가침조약은 '북·미평화협정'속에 들어가는 부속 조항일 수 있다"면서 "이는 결국 북한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한반도 평화체제 보장인 평화협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그동안 한반도 평화보장을 위해서는 6·25전쟁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주도하고 남한이 옵서버로 참여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같은 맥락에서 북측은 지난 96년2월 북·미간 잠정적인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하기도 했다. 북한이 특히 제네바 합의의 폐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불가침 조약 체결을 제의해 주목된다. 이는 법적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한 제네바 합의를 불가침 조약 형태로 대체하자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북한은 지난 94년 체결한 북·미 제네바합의의 각 조항을 열거하며 미국의 약속 위반을 강조한 것은 이 합의의 파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만약 이런 상황까지 간다면 미국에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 볼 수있다. 또한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 추진 사실을 시인한 이후 쏟아지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의식한 조치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 외무성대변인이 "부시 행정부가 우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핵선제 공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명백히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로 조·미 공동성명과 조·미 기본합의문을 완전히 무효화시킨 것"이라며 미국에 의한 제네바합의 파기를 주장한 것도 이같은 차원에서 이해된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