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관한 미셀 푸코의 통찰은 근대 인간중심주의의 허점을 예리하게 찌른다. "감옥은 합리적 이성의 최고 상징이자 실제적 증상을 구현하고 있는 곳이다.근대 인간중심주의의 핵심은 이처럼 도덕적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통제토록 만드는 것이다" 이성적 삶이란 "마음의 감옥"에 갖힌 일상이란 함의다. 이 때문에 이성중심의 근대적 인간형은 자신을 성찰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해 가는 주체로서의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고 푸코는 주장한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몬스터볼"은 푸코의 철학위에 세워진 멜로드라마다. 감옥을 인연으로 만난 흑인여성과 백인남성의 사랑을 통해 이성보다는 비이성,합리보다는 비합리성이 인간본질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배우의 영화"로 불릴 만큼 주역 캐릭터들은 절망의 끝에서 얻은 사랑을 생동감있게 연기했다. 할 베리는 흑인여우로는 사상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빌리 밥 손튼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극중에서 감옥 풍경은 질서 정연하다. 수인(囚人)들은 일과표에 따라 움직이고 제한된 공간에서 그림그리기 등 취미활동을 즐긴다. 사형집행관들은 죄수가 최후를 깔끔하게 맞이하도록 빈틈없이 준비한다. "감정을 배제하고 주어진 일(사형집행)을 한다"는 교도관 행크(빌리 밥 손튼)의 말은 그가 "이성의 상징"인 감독에서 일하는 합리주의자임을 웅변한다. 그러나 행크의 감성은 마비됐다. 그는 흑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인종차별주의자다. 교도관으로 함께 일하는 아들이 흑인죄수가 형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보고 구토증을 일으키자 아들에게 뭇매를 가한다. 아버지의 냉혹함에 아들은 자살로 대항한다. 행크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흑인여성 레티샤(할리 베리)도 아들과 남편을 잃은 절망감에 빠져 있다. 상실감은 행크에게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공간을 마련해 준다. 행크가 이성의 상징이라면 레티샤는 감성적 인물의 전형이다. 마지막장면에서 레티샤는 행크가 자신의 남편을 사형집행한 교도관임을 알게 됐을때 하늘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행크에 대한 분노보다 사랑받고픈 인간의 원초적 욕구가 앞선 까닭이다. "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요"란 레티샤의 말은 "인간은 합리적으로 사유하는 객체이기 이전에 자신에게 닥친 근심을 먼저 생각하는 존재"라는 푸코의 탁견이 집약돼 있다. 아들이 숨진 뒤 행크가 교도관직을 그만둔 것은 "이성적 삶"과의 결별을 뜻한다. 극중 행크가 자신의 아들과 레티샤의 아들이 숨진 자리에서 피를 닦는 행위는 지난날 과오에 대한 일종의 세례의식이다.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위해 감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적어도 "마음의 감옥"에 갇혀있는 한 인간의 행복은 결코 없다는 점을 이 작품은 강조한다. 레티샤역의 할 베리가 죽은 아들얘기를 행크에게 들려줄 때의 연기는 일품이다. 눈물로 부족해 헛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는 깊은 절망감이 조형됐다. 25일 개봉,18세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