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대리 과장들 가운데는 최근 영어학원을 다니는 직원이 부쩍 많아졌다. 밤 11시께 종로 학원가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이 회사 직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회사 일로 지친 이들을 늦은 밤 학원으로 유혹하는 것은 다름아닌 '해외연수'. 직원들이 해외 톱클래스 MBA(경영학석사) 과정 입학허가를 받으면 회사가 이들 가운데 30명 가량을 골라 해외유학 비용 전액을 지원키로 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해 학원을 빠져 나온 이들은 다시 '2차' 공부를 하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SK텔레콤처럼 회사가 직원들의 해외연수를 적극 지원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기업들의 재교육 프로그램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내 연수가 주류였다. 그러나 일부 기업들이 '글로벌 인재 육성'을 내세워 해외 교육을 강화하면서 해외연수는 이제 기업들의 필수 교육 과정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기업들이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경영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글로벌 인재 육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직원들도 재교육이라는 점 외에도 반복되는 업무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장점 때문에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기업들이 해외 유학파 유치에 발벗고 나서면서 자칫 경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이들의 발길을 영어학원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 자녀를 해외에서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도 부수적인 메리트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해외연수 지원대상으로 뽑히기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만큼이나 어려워 영어실력이 달리는 직원들은 아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해외연수를 다녀와야 인정을 해주는 분위기여서 지원자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5년 입사한 LG전자 재경팀의 김창태 과장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그룹이 마련한 글로벌 EMBA 과정을 수료했다. 연세대학교에서 5개월간 공부한 뒤 미국 워싱턴대학에서 1년 동안 MBA 과정을 밟는 코스다. 지난 2000년 팀장의 추천을 받은 뒤 토플시험과 평가 및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 그 해 가을 연수 지원대상자로 선정됐다. 연수 전까지는 피곤의 연속이었다. 업무만으로도 바쁜데 밤에 영어학원을 다니느라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다. 워싱턴대 MBA 과정도 1년으로 압축해 공부하느라 무척 빡빡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두 번 다시 없는 좋은 기회였다. 그는 "해외법인 현지 직원들과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이고 시야가 넓어져 국제적인 관점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해외 MBA를 스카우트하는 데만 열을 올리던 국내 기업들도 눈을 안으로 돌려 사내 직원을 키우기 위한 해외연수 프로그램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사내 우수 직원을 키우면 충성도 면에서 오히려 낫다는 인식이 확산된 결과다. LG는 지난 97년부터 연세대, 워싱턴대와 제휴를 맺고 글로벌 EMBA 과정을 마련, 매년 관리자급 핵심 인재 30명을 교육시키고 있다. 또 LG인화원과 미국 대학을 연계한 10주단위의 영어연수 과정(GBC:Global Business Communication)에도 매년 1백50명 가량을 투입하고 있다. LG칼텍스정유는 독자적으로 해외 정규 MBA 과정 등에 매년 5명을 파견하고 있다. LG전자와 LG화학은 6개월에서 1년인 지역전문가 과정을 마련, 각각 20명과 10명 정도를 주로 신흥시장 국가에 보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 95년 미래 핵심관리자 및 차세대 경영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삼성 MBA' 제도를 마련했다. 지난해와 올해 30명을 선발, 그 중 절반을 세계 20위권의 해외 MBA 과정에 파견했다. 또 국제화 우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지역전문가 제도에 따라 지난해 86명, 올해 1백45명을 파견했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선더버드'라는 4개월짜리 미니 MBA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차장에서부터 임원급까지가 주대상으로 매년 5~10명이 미국 애리조나주 선더버드대학에서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 SK(주)는 회사가 미래 초일류기업으로 발전하는데 필요한 직원들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독창적인 해외연수프로그램을 찾고 있다. 해외 대학뿐아니라 해외 전문기관에서도 연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이다. 각 팀의 성격에 맞는 연수과정에 대한 제안도 받고 있다. 연수기간이나 방법에는 가능한한 제한을 두지 않을 방침이다. 현대.기아자동차 그룹은 올해부터 오는 2006년까지 매년 1백80명씩을 사내 MBA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할 계획이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공학 분야 해외 석박사과정 지원과 해외 MBA 과정 지원 프로그램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김성택 기자 idnt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