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공개 시장에 난기류가 흐르게 된 것은 공교롭게도 지난8월 개정된 유가증권 인수업무 규칙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금융감독원과 증권업협회 등 관련당국이 주간사증권사의 자율권을 상당폭 확대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꿨지만 현실은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8월이후 등록한 17개 기업의 대부분은 현재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떨어졌다. 이중 절반이 넘는 9개 기업에 주간사증권사의 시장조성이 이뤄졌거나 진행중이다. 공모 실패라는 사상 초유의 일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공개시장의 위기가 불완전한 제도개선에서 빚어졌다고 지적한다. 금감원과 증권업협회는 '자율화'를 역설했지만 실제로는 '손발을 묶은 자율화'에 불과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모주 배정방식이다. 8월부터 바뀐 제도에 따르면 주간사증권사는 공모주의 55%를 무조건 하이일드펀드 및 CBO(후순위채)펀드 등 고수익 고위험펀드에 배정해야 한다. 나머지가 우리사주(20%) 기관투자가(10%) 일반투자자(15%)에 돌아온다. 그러나 고수익 고위험펀드는 채권형펀드이기 때문에 주식리스크를 오랫동안 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등록직후에 매도해 단기차익을 노릴 수밖에 없다. 공모가격에 상관 없이 공모가 붕괴가 잇따르는 이면에 하이일드펀드 등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동원증권 관계자는 "하이일드펀드 및 CBO펀드에 대한 배정비율을 낮추지 않고서는 기업공개시장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주간사회사에 자율배정토록 하는 것만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덧붙였다. 주식형펀드에 공모주 청약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정영채 대우증권 주식인수부장은 "현재 주식형펀드는 상장 이전 단계에서 주식을 취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공모시장 수요기반을 확충하고 유통시장과 발행시장의 통합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기 위해서도 이같은 족쇄가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간사증권사의 시장조성 제도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주간사는 매매개시 한달 동안 주가가 공모가의 90% 아래로 떨어질 경우 공모주식의 80%를 공모가의 90%가격에 사들여야 한다. 이에 따라 공모투자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공모투자자의 입장에선 손해 예상금액이 공모투자금액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에 '묻지마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에선 시장조성제도가 없다. 대신 주간사회사가 공모직후 일정기간 동안 거래를 보장하는 시장안정(Market Stability)제도만 존재한다. 국내에도 시장조성이 이처럼 바뀌거나 전문적인 분석능력이 떨어지는 일반투자자 물량(15%)에 대해서만 시장조성이 이뤄지는 쪽으로 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투자지침서'역할을 하는 유가증권신고서의 정확한 기재를 위해 법무법인 및 회계법인의 역할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지적받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