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연내 매듭짓기 위해 칠레산 사과와 배를 관세 철폐 대상에서 빼는 대신 한국산 냉장고와 세탁기도 양허(시장개방) 예외품목으로 인정키로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또 칠레산 포도에 10년간 계절 관세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칠레산 수입 전기동(銅)의 관세 철폐 시한을 10년에서 7년으로 줄이기로 했다. 정부는 16일 청와대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한.칠레 FTA 정부 협상안을 확정, 18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칠레측과 제6차 공식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그러나 양국간 주요 교역품목인 농산물과 공산품 대부분에 대해 길게는 13~15년간 관세를 물리거나 관세 철폐 대상에서 아예 제외키로 한 탓에 '껍데기뿐인 FTA'란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 핵심 농산물과 가전 '빅딜' =정부는 국내 농민들의 반발이 거센 사과와 배를 양허 대상에서 제외하는 대신 냉장고와 세탁기도 관세 철폐 대상에서 예외로 하자는 칠레측 수정 제안을 수용키로 했다. 또 전기동의 수입관세(현행 4.5%) 철폐 시한을 3년 단축하는 조건으로 칠레산 수입 포도에 대해 한국산 포도가 출하되는 계절(5∼10월)엔 정상 관세를 물리고 비생산기(11∼4월)엔 낮은 관세를 매기는 '계절 관세'를 10년간 적용키로 했다. 이에 대해 칠레측은 최근 자국으로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휴대폰과 기계류 TV 등 한국산 일부 공산품에 대한 관세를 FTA 발효 즉시 철폐키로 하는 등 종전 입장에서 한발짝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 남은 쟁점 =칠레산 일부 과일·양념류와 한국산 공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 기간단축 문제가 마지막 분수령이다. 칠레측은 △복숭아 등 일부 과일류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등 육류 △고추 마늘 양파 등 양념류에 대해 한국측이 제시한 관세 철폐 시한(5∼15년)을 3∼5년 가량 줄이고 관세할당(TRQ)을 통한 수입물량을 10∼20% 가량 추가로 늘려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칠레측은 이들 농.축산물에 대한 요구 조건을 들어줄 경우 한국의 대(對)칠레 최대 수출품(지난해 총수출의 30%)인 자동차를 관세 철폐 품목에 포함시키겠다는 입장을 전달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정부는 철강 섬유(폴리에스터) 타이어 석유화학제품(폴리스티렌) 등 주요 수출품에 대한 칠레측의 관세 철폐 시한(5∼13년)을 3∼5년 가량 줄여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 향후 전망은 =정부는 제6차 협상을 통해 상품 양허안에 대한 막판 이견 절충을 시도한 뒤 원산지 통관 서비스 투자 지식재산권 등 나머지 협상 분야에 대해서도 일괄 타결을 추진할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최대 난제인 양허안에 대해 합의가 이뤄질 경우 협상 타결이 9부 능선에 다다른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12월 대선 등 정치 일정과 농민 반발 등을 감안할 때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협정문 서명과 국회 비준 절차는 내년 상반기로 넘어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정한영 기자 c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