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악 천불동 계곡] 神이 그린 가을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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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황금빛 넘실대는 들녘은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남으로 내달리는 단풍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부산아시아드에서 연일 울려퍼지는 승전보가 더해져 그 흥취를 한껏 돋운다.
한편으로는 뒤숭숭한 시절이다.
나라 안팎으로 횡행하는 쌍소리와 드잡이에, 경제사정 또한 어둡기만 해 우울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대~한민국의 가을'에 딴지를 걸수는 없는 법.
잠시 일상을 접어두고 이 가을, 절정의 자연색감에 몸을 맡겨보는게 어떨까.
설악산 천불동계곡을 향한다.
천불동계곡은 설악의 얼굴인 외설악 중에서도 첫번째 가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계곡.
비선대에서 시작,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에 이르는 7km의 깊은 골로 깎아지른 듯한 암벽 사이사이를 물들이는 단풍이 으뜸이다.
길은 설악동 소공원에서 시작한다.
소공원 매표소를 들어서면 신흥사 일주문.
일주문 너머 오른편에 거대한 몸집의 통일대불이 오가는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울산바위쪽에서 뻗어내린 내원골 합류부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트레킹에 나선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길의 공기가 유난히 신선하다.
이름모를 용사의 비와 휴게소를 지나 천불동계곡의 관문인 비선대까지 2.5km.
준비운동을 위해 내놓은 듯 평탄한 길에 발걸음이 가볍다.
비선대산장 앞 능선 위에 우뚝한 봉우리가 장관이다.
장군봉 형제봉 선녀봉이 땅을 박차고 나란히 하늘로 날아 오르는 모습이다.
계곡을 가득 채운 너럭바위에는 잠시 숨을 돌리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바로 위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갈림길.
오른쪽은 저 높은 미륵봉 중간의 금강굴, 왼쪽은 계곡 깊이 들어가는 길이다.
1천여개의 뾰족 봉우리들이 마치 깎아 다듬은 불상을 세워놓은 듯하다는 천불동의 참모습은 여기서부터 드러난다.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지만 힘들지 않다.
곳곳에 놓인 철계단이 발걸음을 돕는다.
천불동계곡의 지류중 가장 큰 설악골을 지나면 문수보살이 목욕을 했다는 문수담.
물색이 옥을 곱게 갈아 풀어 놓은 것처럼 맑고 투명하다.
비선대에서 1시간.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면 귀면암에 닿는다.
송곳 모양으로 솟은 거대한 암벽이 귀신 얼굴형상이란다.
급경사진 철계단을 따라 귀면암을 내려선다.
길은 지그재그로 물을 건너며 계곡 양편으로 이어진다.
문득 뒤를 돌아보면 발갛게 물든 단풍이 근육질의 계곡 암벽에 악센트를 준다.
앞만 보고 걸을 때는 단풍이 없는 것 같다가 잠시 서 숨을 고르거나, 뒤를 돌아볼 때 화사하게 다가서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오련폭포 앞에서는 숨이 막힌다.
기암과 침봉이 둘러쳐져 꽉 막힌 듯한 계곡 사이로 5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진다.
힘찬 물줄기에 흔들리는 단풍색이 선명하다.
계곡사면 오른편 높이 걸쳐 있는 철계단을 따라 오르는 사람들까지 흔들리는 단풍잎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오련폭 일대를 천불동의 수문장이라고 여겨 앞문닫이라고 했단다.
오련폭 제일 위쪽 너럭바위에 앉아 발을 식힌다.
신선이 따로 없다.
귀면암에서 1시간이 넘게 흘린 땀이 싹 가신다.
다시 힘을 내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이내 양폭산장에 닿는다.
산행객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양폭 너머 희운각대피소~소청~중청~대청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조금은 힘겹게 느껴진다.
굳이 대청봉을 '정복'할 이유도 없다.
설악 계곡의 단풍, 입산의 즐거움은 양폭까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
속초=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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