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對北) 4천억원 불법 지원' 의혹과 관련한 계좌추적 문제에 대해 이근영 금감위원장은 "금융실명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그는 또 "계좌추적은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중간에 현금화되면 더이상 추적이 어려워지는 등 한계도 있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전윤철 경제부총리와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도 약속이나 한듯 계좌추적 불가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역시 요건이 불충분하고 계좌 추적권을 발동할 사안은 아니라는 주장들이다. 우리는 고위 당국자들의 이같은 법해석에도 나름의 논리가 없지는 않다고 본다. 계좌추적이 남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금융실명법의 취지이고 보면 단순히 의혹이 제기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국민의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적 의혹이 너무도 커져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건 실체적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여야의 주장이 평행선을 긋는 가운데 의혹을 장기간 방치하는 것은 엄청난 국민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금융실명제법은 각종 불법행위와 관련하여 당국이 특정계좌의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할 수 있도록 분명히 보장하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이번 사안은 법이 정한 계좌추적 관련 요건을 이미 상당수준 만족시키고 있다는 견해도 적지않다. 법 제4조1항은 당국이 내부자거래와 불공정거래에 대해 계좌조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장부외 거래 등 개별법을 위반한 다양한 불법거래에 대해 계좌를 추적해 조사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계좌추적에 관한 그동안의 관행을 감안하더라도 이를 미룰 이유는 없다고 본다. 금감위의 계좌추적이 작년 한해 만도 30만건을 넘고 있는 마당에 유독 이번 사안에서만 계속 요건이 불충분하다고 고집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도 어렵다. 때마침 검찰이 명예훼손 고소건으로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고는 하지만 불법적인 자금거래 의혹에 대해 금감위가 스스로 두손을 놓고 있는 것은 경우에 따라 금감위의 직무유기로 의심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정부가 계좌추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마치 무언가 숨겨야 할 것이 많은 듯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안은 바로 정부의 투명성 문제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