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 11월 동원F&B의 창업주인 김재철 회장은 동원산업의 주식 59만주를 장남에게 넘기면서 62억3천8백만원의 증여세를 자진 납세했다. 공식 절차를 거친 대규모 증여에 놀란 국세청이 주식 위장분산이 없는지 내사했지만 깨끗했다고 한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한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는 세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무용 가구 전문생산업체인 '퍼시스'의 손동창 회장은 기업을 공개하면서 개인 지분의 3%를 우리사주조합에 희사했다. 이 회사는 투명경영 투명경리로도 이름이 높다. 때문에 사용자 노동자라는 개념조차 없을 정도로 노사간의 신뢰가 돈독하다. '윤리경영이 경쟁력이다'(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엮음, 예영커뮤니케이션, 1만1천원)는 이처럼 투명경영과 윤리경영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강화시켜온 10개 기업들의 사례를 담고 있다. 동화약품공업 유한양행 대덕전자 태평양 풀무원 웅진닷컴 동원F&B 퍼시스 경동보일러 삼성전자 등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가 선정한 경제정의기업상을 받은 업체들이다. 경영.경제학을 전공한 교수와 컨설턴트들이 이들 기업의 경영사례를 분석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회사이자 최초의 제약기업인 동화약품은 1백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수명을 30년으로 추정하는데 비하면 '장수 만만세'를 부를 만한 연륜이다. 무엇이 동화약품을 장수 기업으로 만들었을까. 기업의 창립정신과 철학, 이념을 철저히 전승하고 기업 경영에 반영시켜 제도화했기 때문이라고 이 책은 분석한다. 동화약품은 전직원이 한가족이라는 정신을 줄곧 견지해 왔다. 오늘날의 전문 경영인과 비슷한 지배인 제도를 1937년에 도입했고 지난 78년에는 대기업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생산직 사원의 완전 월급제를 단행했다. 일제 때에는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행정기관인 서울연통부를 회사 안에 설치하기도 했다. 교육.출판사업을 하는 웅진닷컴은 건전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을 제1의 원칙으로 삼는다. 조세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이나 경제정의기업상을 두차례나 수상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또한 기업의 인간주의 도덕주의 합리주의를 경영이념으로 삼아 직원의 결속과 기업이익의 사회환원에도 앞장서 왔다. 화장품을 만드는 태평양은 고객만족을 통한 고객가치 창조경영이 돋보이는 회사다. 전국 어디서나 연결되는 통합상담전화 운용, 고객상담 프로그램 개발.운용, 피부예보 서비스, 고객평가단 운영 등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이를 말해 준다. '가장 좋은 상품의 생산, 성실한 납세,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을 기업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유한양행, 열린 경영과 노사화합이 두드러진 대덕전자, 기업을 통해 이상을 실현해 가고 있는 풀무원, '코리아 브랜드'의 이미지를 향상시킨 삼성전자 등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책의 편집을 맡은 한양대 한홍렬 교수는 "기업의 이윤 추구와 사회적 책임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정도경영만이 기업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