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紗羅 < 시인 / 서울산업대 교수 > 추석은 언제나 가을보다 먼저 옵니다. '오~매 단풍 들것네'하고 시인이 말하는 그런 가을까지 가지 않은 날에 추석이 옵니다. 그런데 추석은 마치 사람처럼 오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식구들,친척들이 모여드는 날이 추석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각처에 흩어져 자신의 생을 꾸리느라 함께 모이기 힘들었던 가족들이 귀성길에 오를 것이고,선조의 무덤과 만나고,종갓집에 들르고,그리고 보름달을 볼 것입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추석은 있습니다. 아예 추석이 고향인 셈이지요. 서로 모여 행복한 그것이 추석이면,추석에 집안이 모이는 일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음력 8월 보름날,날마다 보던 달이 만월이 되는 날이면 누구나 둥근 마음으로 모여 고달픈 생활의 내색일랑 서로 삼가면서 현실 저 너머의 즐거움을 달과 함께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막막한 일을 당했어도 이 날만은 다 잊어버리고 그저 달빛 아래서 피붙이들과 함께 지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한가위의 자리입니다. 푸짐한 결실의 상차림이 없더라도,쳐다만 보아도 위안이 되는 그런 얼굴들과 정을 나누는 일이 그리웠던 사람들이 있는 한 결코 추석의 의미가 변질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밤송이를 까거나 토란국 끓는 냄새나 솔잎을 따면서 추석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빨간 에나멜 구두 한켤레,감촉이 가슴까지 따스하게 만들던 스웨터,코르덴 바지,한복 등을 추석빔으로 받고 친척집에 인사 다니던 그 길에 피었던 코스모스를 기억합니다. 또 이날을 맞아 사촌,육촌 또래들이 모여서 마냥 즐거웠던 아이들.북적이는 대소가의 가족들 틈에서 집어먹던 송편과 대추의 맛은 지금도 혀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에는 뼈아픈 현실도 있게 마련이지요. 유독 이 날에 말 못할 가족 간의 불화가 노출되는 역설을 겪기도 합니다. 특히 남편과 나란히 앉을 틈도 없이 차례 준비를 해야 하는 대다수의 주부들이 새삼 자신의 일그러진 정체성을 간파한 지금,그녀들의 도전도 무시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녀들은 압니다. 마치 싸움터에 임하는 전사 같은 그녀들에게도 추석을 겪은 자신들의 유년의 기억들이 추석을 맞는 그녀들의 탈출구임을…. 저도 다른 이들처럼 그 시절에 기대어 추석을 기릴 때가 많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을까요. 차례를 지내러 문중이 모여 사는 남쪽 고향에 내려가면,종갓집에는 큰어머니와 머리를 조금 다친 마음 착한 사촌오빠가 가난한 집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마을일을 보셨다는 이유로 큰아버지께서 6·25 때 뒷산에서 총살당하셨고,다섯 남매를 홀로 키우신 큰어머니 댁에는 네살 위의 막내사촌언니가 늘 저를 부러워하곤 했지요. 특히 시골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귀신놀이 하러 가던 밤길을 밝혀주던 달이 환한 추석날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추억도 남기지 않으시고 추석 가까운 날 홀연히 아버지가 없어져버려서 생긴 치유 불가능한 언니의 병은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사는 지금도 평생을 추석과 함께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그 사촌 언니 같은 이 땅의 언니들,오빠들이 올해도 추석을 맞습니다. 그 마음들 위에 달이 길을 만들어주고 친구가 돼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의 달은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더 크게 비춰주면 좋겠습니다. 지구촌 곳곳의 가슴 저린 모든 사고 현장들,전장들,가족들,가축들,나무들,꿈들에게 높이 돋아 멀리 비춰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추석이 교통난의 상징,번잡한 명절거리가 아니라 추석이 갖는 따뜻한 정과 풍요함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쳤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추석이 기가 막히는 수재민들에게는 얼마나 힘겨운 날이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이번 추석처럼 고통 속에 잠긴 이웃들과 함께 보내야 하는 추석이 다시 없을 듯합니다. 집과 논과 밭은 물론 살아온 흔적들조차 모두 흙탕물이 삼켜버린 수재민들에게 우리 모두 어떻게 '추석의 의미'로 그들에게 다가서야 하는지 눈을 감고 생각해야겠지요. 덜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망연한 그들처럼 망연할 수 없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어떤 마음부터 나누어야 하는지,달이 기울기 전에 우리에게 닥친 고통이 잦아들도록 우리 모두 달처럼 환해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