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종로행정고시학원. 다음달 20일 실시되는 '공인중개사시험' 준비반은 오전 9시부터 2백여명의 학생들로 빽빽했다. 대학생들과 가정주부, 넥타이를 맨 중년 직장인 등 다채로운 경력의 수강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받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오전 10시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교재를 꺼내고 노트 필기를 하느라 다들 여념이 없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중년 신사는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칠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머리가 희끗한 늦깎이 학생도 눈에 띄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후 연금 혜택을 받고 있다는 이성규 할아버지(77)는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늙었지만 뭔가 해보려는 의지가 중요한 게야"라며 "올해 결과에 상관 없이 내년에도 공인중개사에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박명옥씨(38.은평구 불광동)는 "이번이 두번째 도전"이라며 "남편 일자리가 불안해서 부업준비를 위해 중개사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여유시간을 이용해 수업을 듣는 직장인들도 있었다. 김오식씨(59.서울 종로)는 "무역업을 하다 잠시 재충전을 위해 쉬고 있다"며 "몇년 후를 대비해 '보험'에 든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아예 중개사시험 준비를 위해 휴학했다는 김모씨(27.경희대 행정학과 3)는 "대학생들도 예전처럼 기업 취직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며 "작지만 바로 '창업'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공인중개사시험 응시생은 지난해에 비해 2배 가량 늘어난 26만여명. 중개사시험 사상 최대임은 물론이고 자격검정시험 지원접수 사상 단연 최대 규모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이 전체 응시인원의 70%를 차지해 최근 수도권의 부동산 열기를 반영하고 있다는 풀이도 나온다. 이선주 종로행정고시학원 부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살벌한 구조조정을 경험한 직장인들 사이에 '평생직장은 없고 평생직업만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면서 자격증시험이 가열되고 있다"며 "공무원들도 퇴직 후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기 위해 상담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시장 규모에 비해 자격증 소지자를 너무 많이 배출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자 수는 총 12만6천1백71명. 이 중 4만여명 안팎의 합격자만 부동산 중개소를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의 양소순 팀장은 "정부가 실직자 구제 차원에서 격년제로 운영하던 시험을 지난 99년부터 연 1회로 바꾸면서 자격증이 남발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담당 부처인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중개사 자격시험은 행정고시 같은 임용시험과 다르기 때문에 자격취득자 수와 업소개업자 수를 비교해 합격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축하고 앞으로도 일정 점수(전과목 평균 60점)를 넘으면 합격시키는 제도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이태명 기자 dolph@hankyung.com